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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좌필드 353번지:"새벽 2시.그놈이 들어왔다" 상

여름방학.

by GOLDRAGON

https://suno.com/s/1CjaOQ85fVFfgFgs

작사:GOLDRAGON 곡:SUNO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53-22호.
이 주소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 353-22호예요."
어린 시절, 잘 먹어보지도 못한 귀한 음식이었던 700원짜리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면, 늘 내가 도맡아 주문 전화를 걸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 산 무선 전화기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보고 싶었고, 전화를 하면 음식이 집으로 배달된다는 게 신기했고(지금이야 너무도 당연하고 흔한일상인),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던 짜장면을 직접 주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집은, 결혼해 출가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지금의 본가 이전에, 우리 가족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전체를 품고 있었고, 수많은 유년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집.
오늘은 바로 그 집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우리가 그 동네 아랫마을 단층집에 살 때부터 늘 위쪽 이층 집들이 늘어선 골목에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곤했다.
그 골목은 그 시절 기준으로 '부자동네'에 가까웠다.
큼직하고 단정하게 지어진 이층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훗날 성인이 된 후,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우연히 들은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살던 그 집은 과거에 지역 경찰서장이 거주하던 집이었다는 것.
1980년대의 경찰서장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대단한 집이었구나' 싶은 막연한 인상이 남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그 동네는 부자동네라는 인식과 소문 때문인지 치안이 꽤 험했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골목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는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집에도 밤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위협적인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조금 괴팍한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무서워하는 덩치 큰 개를 키웠다.
'미친개'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 개가 늘 대문을 열어놓은 채 목줄도 없이 풀려 다녔다는 점이었다.
개는 골목을 제 집 마당처럼 활보했고, 실제로 몇몇 이웃들은 물려 상처를 입기도 했다.

동네 주민들이 항의도 해봤지만 그 아주머니는 매번 "알았다"고만했을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골목 한복판에서 그 개와 마주쳤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개와 눈이 마주친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누군가 골목을 지나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가 막히게도 아무도 없었다.
그 개 역시 나를 노려보며 멈춰 서 있었고, 나는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그저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어린 마음에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크게 울면, 이 개가 덤벼들 거라는 걸.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개는 짖지도 않았고, 공격하지도 않았다.
잠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 개는, 이윽고 조용히 내 옆을 지나쳐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골목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를 부둥켜안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이유도 모른 채 한참을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의 눈을 그 미친개도 알아본 걸까.
앞집의 아주머니는 자신이 저지른 민폐 때문에 어떤 벌을 받은 건 아닐까.
얼마 후, 그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도는 집주인을 알몸으로 묶어 놓고 금품을 갈취하고 달아났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나에게 무척 큰 충격이었다.

그 일 이후, 우리 집에도 잊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1층에 세 들어 살던 젊은 치과 간호사 자매와 그녀들의 어머니가 사는 공간에 강도가 침입했던 것이다.
그날은 새벽 2~3시경.
우리는 아버지, 엄마, 나 셋이 안방에서 함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살려주세요… 누가 집 안에 들어왔어요…"
낯선 여자의 조용히 흐느끼는 목소리였다.

거실에 누군가 후레시를 비추며 살금살금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과감히 내려가는 정의의 사도 같은 모습은 없었다.

솔직히 그 상황에 그 누가 단숨에 내려가서 강도를 제압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아버지도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대신, 수시로 노래하는 것이 일상이셨던 아버지는 창문을 활짝 열더니 단련된 목소리로 아래 마당을 향해 목청껏 소리치셨다.

"야! 누구야! 어떤 놈이야!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 돌아다니는 거야!"

칠흑 같은 새벽, 온 동네가 들썩였고, 덕분에 강도는 제대로 혼쭐이 났는지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날 아버지는 내려가지 않고도 집을 지켜낸, '사자후'가 필살기인 히어로였다.

아직도 궁금한 건 야구방망이는 왜 흔들며 소리치셨을까? 하는 의문이 남긴 한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이번엔 백주대낮, 엄마와 아래층 아주머니가 동네 재래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나가려 대문을 열었을 때, 낯선 남자가 불쑥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반사적으로 외치셨다.

"뭐예요, 왜 남의 집에 막 들어오는 거예요!"

그 남자는 입에담기 힘든 심한 욕을 한마디 툭 내뱉고는 그대로 도망쳤다.
놀란 엄마, 나, 아래층 아주머니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시각, 바로 옆집에서는 강도가 금품을 털어가고 있었다.
2인 1조였던 강도 중 한 명이 우리 집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결국 우리 집 대문 옆 전봇대에는 방범초소가 세워졌다.

밤이면 경광등이 돌아갔고, 방범대원들이 번갈아가며 골목을 지켰다.
나는 밤이 되면 전봇대의 스위치를 눌러 경광등을 켜는 일을 맡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자 방범초소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어느새 흉물스럽게 담배꽁초만 나뒹구는 흡연장소로 변했다.
그 이후에도 골목에는 여전히 위험한 밤손님들이 어슬렁거렸다.


물론, 이 집에 얽힌 기억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현관문을 열면 마당이 있었고, 화단이 있었고, 그 안엔 된장독과 계절 따라 변하는 나무와 꽃, 그리고 추억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다음 편 예고: '대추나무 아래의 시간들'
병아리의 죽음, 노동을 통한 짜장면보상, 눈썰매와 어둠의 연탄광, 이불장에서의 다이빙사건, 바퀴벌레와의 동침, 누나들과의 카세트테이프 추억, 그리고 컴퓨터 선물까지. 기억의 온기가 마당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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