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높이 구두의 반란

깔창

by FreedWriter

일생일대의 가장 큰 행사라 할 수 있는 결혼식. 직업군인들의 결혼식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포함되어 있다. 동기들 또는 선 후배들이 축하해 주는 예도단 이벤트가 그것이다. 나 또한, 동기들에게 부탁했다. 워낙 장난기 많은 동기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이벤트라도 해낼 자신은 충만했다.


결혼식 당일, 나는 평소와 달리 조금 더 큰 키로 성장했다. 깔창이 아닌, 키높이 구두를 신고 예식에 임했다. 엄숙하고 진지한 결혼식. 문제는 마지막 순서였다. 동기들의 예도단 이벤트. 4가지 관문을 준비해 주었고, 식전에도 공개해 주지 않았기에 긴장과 기대, 설렘이 가득했다.


군 시절부터 몸으로 부딪치는 퍼포먼스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평소와는 다른 구두 굽이 내 발바닥과 지면 사이의 거리를 살짝 높여놓았던 것. 긴 듯, 짧은 듯한 높이는 결국 이벤트 안에 이벤트를 만들어버렸다.


체력의 관문을 맡았던 동기가 머리에 손 얹고 가위차기라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던 것. 예상치 못했지만, 5번만 하면 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 있게 임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에 문제가 생겼다.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면서 버진 로드 안에 있던 중력은 점프한 나를 강력한 힘으로 끌어들였다. 그 힘을 이길 수 없던 나는, 높은 구두 굽으로 인해 온전치 못한 착지로 결국, 착지와 동시에 균형을 잃고 멋지게 앞구르기를 하며 발목을 삐긋해버렸다.


하객들은 박장대소했지만, 나의 발목은 울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알고 있으니 티도 낼 수 없었다. 다행히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지만, 진짜 시련은 그다음이었다. 바로 신혼여행.


공항에 도착한 나는 제일 먼저 약국부터 찾아 파스와 진통제를 가득 챙겼다. 혹여나,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아프더라도 의학의 힘으로 버티고 싶었기에. 아름다운 하와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서 파스와 진통제의 향도 함께 느껴졌다.


귀국해서 바로 병원 진료를 받아봤다. 인대가 늘어나서 당분간 운동은 금지란다. 중대장 임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지휘관에게 석고대죄를 하며 회복에 힘썼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깔창, 키높이 구두'사건 덕분에 키높이 구두나 깔창은 나의 삶에 동행하고 있지 않다. 조금 높아 보이고 싶어 덧댄 선택이 의외의 해프닝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그릇은 자신이 안다고 했던가. 버텨내는 웃픈 순간이야말로 진짜 키를 키워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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