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생 시절의 서울은 그야말로 ‘놀이동산 풀 패키지’였다. 벚꽃 필 무렵이면 캠퍼스를 벗어나 명소마다 출동했고, 시험 끝나면 마치 전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술집에 모여 서로의 한을 풀었다. 그때는 소주 한 잔이 세계 평화의 해답 같았고, 친구들과의 수다는 IMF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는 퍼즐이자 미로였고, 청계천은 “여기가 진짜 도심 맞아?”라며 놀라게 하는 나만의 작은 오아시스였다. 남산, 한강, 놀이공원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그 풍경은 “서울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당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다이나믹한 생활을 보낸 뒤, 직업군인의 삶을 택했다. 입대한 군 생활은 조용한 해안선과 한정된 부대원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북적이던 서울이 갑자기 ‘체력 테스트장’처럼 느껴졌다. 군대에서 서로 잘났다며 티격태격하던 모습이, 서울 한복판에서 남과 비교하며 지내던 내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보다 사람이 많은 도시가 주는 피곤함은 결국 나 자신과 싸우던 버거움이었다는 걸.
돌이켜보면 서울은 나를 성장시킨 놀이터였다. 시끄럽고 번잡했기에 ‘고요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었기에 ‘나 자신을 믿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벚꽃보다는 조용한 들꽃을, 북적임보다는 작은 식탁 위의 웃음을 더 소중히 여긴다. 서울에서 배운 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줄 아는 ‘성장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기술 덕분에, 여전히 북적이는 서울을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