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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신 그대로

by FreedWriter

군 생활하는 17년 동안 떨어져 지낸 뒤, 전역 후 우연히 부모님 댁과 30여 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정착했다. 아니, 정착은 아니지만 살 집을 구했다. 큰 약속을 잡지 않더라도 쉽게 뵐 수 있는 거리다.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도 부모님 댁 근처이고, 나 또한 모교회이기에 매주 특별한 일 없으면 교회를 다녀온다. 자녀들도 쉬고 싶은 마음 아니면 같이 다닌다. 어르신들이라고 해야 하나, 환갑이 넘으신 조부모님은 손주들을 대부분 좋아하신다.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다. 나와 내 동생을 키우시는 것도 힘드셨을 텐데 손주를 보여드리는 것만 해도 너무 좋아해주신다.


육아의 전쟁을 알고 계셔서 그런지 이것저것 다양한 반찬을 해 주시려고 한다. 손주들 반찬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 내외가 먹을 것도 준비해 주신다. 저녁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진리를 무시하신다. 가령, 끼니는 거르지 않도록 밑반찬을 해주시려고 한다. 그런 나는 손사래 치며 괜찮다고 하며 완강하게 사양한다. 내 자식이니 내가 해줄 수 있고,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을 손주들이 먹지 않으면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내가 먹게 된다. 그렇게 또 살이 찌고 반복되기에 말이다.


용돈을 주시려고 해도, 내가 많이 드리지도 못하는데, 잘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손주들 안 챙겨 주셔도 된다고 사양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용돈 받는 것은 자녀들의 복이 들어오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 하신다. 별수 없이 자녀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고 두 손 공손하게 받도록 알려준다.


나는 고등학교를 지방, 기숙사 학교에서 3년을 지냈고, 대학 생활 잠깐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가 군 생활을 시작했기에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러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주들을 매우 좋아해주시니.


나의 하나밖에 없는 연 년생의 여동생은 일본에서 지낸 지 오래다. 대학 생활까지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직장 생활을 하며 외로운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올해 11월 드디어 결혼하는 여동생이 기특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유독 우리 자녀들을 예뻐해주신다. 육아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육아지만, 가끔 보는 손주들이 내 부모님은 예쁘기만 한가 보다.


나의 어린 시절. 사고도 많이 치고, 말썽도 많이 부렸지만 조금 컸다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소위 머리가 컸나 보다. 부모님이 하시는 모습에 대해 아직도 부담은 있지만 이제는 내려놓았다.


내가 못한 효를 내 자녀들이 하는 것 같다. 손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 인 것 같다. 이젠 용돈을 주시든, 반찬을 해서 주시든,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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