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훈련으로 인해 3주 만에 집에 돌아온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온 가족 4명이 집 앞 고깃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도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날이었고, 고깃집 상호를 노래를 부르며 애타게 기다렸기에,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내와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며 술잔을 기울였고, 식사를 마무리한 뒤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여니와 라미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는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잔뜩 담아내고 있었으나, 이성을 찾은 엄마 아빠는 "그만~"이라는 명령어만 반복한다.
한 봉지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덥고 습한 날이기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겠다는 두 녀석들. 승인을 해줬더니 쓰레기를 버리고 와야 한다고 다시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한다. 신나게 뛰어가던 여니와 라미.
그 순간.
"으앙~~~~~"
라미가 넘어지면서 울음이 터졌다. 라미와 가까이 있던 아내가 뛰어간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가득 검은 봉지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며 빠르게 녹는 느낌이 싸하게 느껴진다.
라미에게 다가가는 순간, 아내의 다급한 모습과, 눈가에서 흐르는 빨간색 피가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하게 해줬다. 상가가 떠나갈 듯한 울음소리는 지나가는 다른 분들의 주의를 집중하게 했고, 흐르는 피가 상당했다.
지나가던 어머니 한 분께서 휴지를 건네주셨고 아내가 급히 지혈을 했다. 왼쪽 눈썹 바로 밑. 지혈을 하고 있던 휴지를 바꾸는 순간 보이는 상처는 예사롭지 않았다. 최소 3cm 정도 됐을까나. 지혈을 하고 있지만, 고여 있는 피의 양도 상당했다.
아내는 다급했고, 우왕좌왕하는 여니의 모습과 울음이 그치지 않는 라미의 모습까지. 아빠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고밖에 없었다. 밤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술을 한 잔씩 했기에 운전은 불가능했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기보다는 119를 부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을 해 고민 없이 119를 눌렀다.
급하지만, 당황스러웠지만, 신고할 때는 차분해야 한다. 나와 아내는 군인이었고, 군인이기에 상황을 판단하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아내는 라미를 진정시켰고, 나는 신고를 해서 정확한 위치와 아이의 상태를 전달했다. 접수를 한 소방관 분께서는 바로 출동해 주신다고 하셨고, 이제는 기다리는 일 밖에.
신고한 뒤 5분 안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지만, 스팸이 아닌 출동 중인 119 대원분의 전화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세세하게 현재 상황과 위치를 전달드렸다. 최초 신고한 뒤 15분 정도 지났을까.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진정시키고 있던 라미를 차량 안으로 옮기고 응급 지혈을 해주셨다.
만 5살인 라미의 상태를 본 응급 대원분은 상처 부위가 깊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해주셨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수는 있지만, 어린아이의 얼굴 부위다 보니 흉터가 남을 수 있을 거란 판단에 성형외과 응급 수술이 가능한 곳을 알아봐 주셨다.
아내와 라미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고, 나와 여니는 집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두고 택시를 타고 알려 주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도착 후 진료를 보니 상처가 깊어 뼈가 보인다고 했다.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해서 뼈에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에도 응급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분들이 상당했다. 라미와 비슷한 또래 같은 아이가 더 많이 다쳐 먼저 수술한다고 하여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라미가 걱정돼서 괜찮은지 물어봤더니 지혈만 해놓은 눈 부위보다, 넘어지면서 다친 무릎 부위의 조금의 찰과상이 더 아프단다.
긴장이 풀렸는지, 이불 속에 누운 라미는 어느새 잠에 들어버렸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라미 차례를 알려주는 간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 아내와 여니. 그리고 나. 수술실 밖 의자에 쪼르르 앉아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수술 부위만 국소 마취한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했으나, 수술실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라미 울음소리인가, 마취가 풀린 건가.'
궁금하고 걱정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40여 분이 흘러 수술방이 열리고 의사선생님이 나오셨다.
"수술은 잘 끝났고, 피곤했는지 잠들어버렸네요. 잘 끝났고, 약국이 다 문을 닫아 처방을 받아도 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 다시 오세요. 자세한 사항은 원무과 가서 받으시면 됩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라미. 다친 부위에는 거즈와 테이프로 덮여있었다. 상처 부위를 꿰매서 그런지 수술 전과는 다르게 눈 부위가 벌에 쏳인 것처럼 부어있었다.
'고생했어, 잘했어.'
엄마의 품에 꼭 안은 라미가 안쓰럽기만 하다. 왜 다치게 놔뒀는지 아빠인 내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상처 부위가 조금만 밑이었다면 왼쪽 눈 자체가... ... 아니다. 이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는 것. 자라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나, 라미의 부어있는 눈을 보고 있자니 지켜주지 못한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만 했다.
'부디, 많은 흉이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줘야겠다.'
잘 이겨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