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동: 두번째 걸음마를 딛어갑니다.

1부- 환자로 살아가기

by 기도집주인딸

중환자실, 어린이병동에서의 이야기는 나의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 장면 하나하나씩을 글로 옮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어린이병동을 지나 재활병동으로 옮겨졌고, 그 공간에서는 기억이 훨씬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이병동은 말 그대로 질병의 종류보다는 나이에 초점을 맞춘 어린이들의 집합소였다. 반면 재활병동은 ‘회복’을 위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기만의 싸움을 하며 앞으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활병동에도 다양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모두가 의지가 참 대단했다. 정말로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의지를 못 느낄것이다. 특히 다리가 없으시고 대신 의족을 착용한 상태로 매일같이 운동하신 20대분의 (나이가 더 많더라도 젊게 적어드릴게요.) 그 열정은 존경스러웠다.

나 역시 아빠와 함께 매일같이 운동에 힘썼다. (물론, 그 시절 내 몸은 나와 좀 사이가 안 좋았다. 손은 '펴!' 하면 모른 척, 다리는 ‘가자!’ 하면 뒤로 물러서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팀워크는 꽝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훈련하고, 억지로라도 한 걸음씩 내디디다 보니 어느 순간, 몸도 “그래, 한번 해보자” 하는 눈치였다.

운동 시간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재미들을 찾아갔다. 나는 재활운동실에서 처음으로 트럼프 카드를 보았고, 그것으로 게임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또, 병원에서 시계 보는 법도 스스로 익혔던 것 같다. 정규 재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얼마나 뚫어져라 쳐다봤던지…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느리게 흐르는지 새삼 깨달았었다. (아 어린 내가 말하니 웃기지만 지금은 시간이 정말 빨리간다.(아까운 내 학창시절…))

그리고 병원 생활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남은 건, 음식과 관련된 몇 가지 즐거운 기억들이었다. (음식이 주는 소소한 행복은 날 항상 웃게 한다!)

병동에 있던 날 중 하나, 나는 처음으로 볶음순대라는 걸 먹어봤다. 누군가가(아마 엄마?) 내게 순대를 사주신 날이었는데, 그 순대의 맛은 입에 넣는 순간,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매콤하면서도 쫄깃하고, 야채까지 아삭아삭. 그때 처음으로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또 어떤 날은 찜닭을 다같이 나누어 먹었다. 누군가가 병동에 찜닭을 사다 주셨고, 우리는 그걸 한 숟가락씩 나눠가며 먹었다. 서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을 찾으며, 어떤 애는 당면만 집어 먹고, 누군가는 감자만 좋아하고. 나는 닭고기를 좋아해서 계속 살코기 쪽만 노렸던 듯한 기억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 모두가 한 테이블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장면, 어린 시절의 소풍 같았다. 매일 똑같은 병원 생활 중에서 그날은 분명, 조금은 특별한 날 아니었을까.

음식에 관한 기억 중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고 병원 식당에서 외식을 한 날, 특히 그 식당은 내 기억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병원식을 먹는 게 당연했던 내게, 그 외식은 말 그대로 '행복’으로 다가온 듯 했다. 국물의 따뜻함, 볶음밥의 고소함, 그리고 옆에서 밥을 같이 먹는 엄마 아빠의 기쁨. 그 이후에도 난 병원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종종 그 식당에 가 그 메뉴를 주문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가장 깊이 남은 기억은 단순히 몸에 대한 원망이나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보다 더 또렷한 건 음식의 맛, 친구들과의 웃음, 엄마 아빠의 따뜻한 손이었다.

그러한 시간들을 지나 나는 비록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이 갑자기 편해진건 아니었
다. 여전히 몸은 삐걱거렸고, 마음도 하루에 두 번쯤은 삐딱선을 탔다. 그래도 걸을 수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었다. (이쯤 되면 내 무릎이 나보다 인생을 더 잘 안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아직도 완벽한 회복은 아니다. 가끔씩 몸이 말을 듣지 않기도 하고,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그때 겪은 모든 순간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