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환자로 살아가기
‘퇴원’이라는 단어가 드디어 내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 퇴원은 내가 꿈꾸던 ‘끝’이 아니었다. 병원 생활의 마침표가 되기는커녕, 또 다른 병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실 나는 퇴원에 대한 하나의 로망이 있었다. 바로 아픈 손으로 환자복을 옷 수거함에 휙— 던지는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수없이 기다렸는데, 결국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가 조심스레 내 환자복을 접어 넣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출샷이라도 찍어둘걸 아쉽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은 나를 꽤 많이 회복시켰다.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 아닐까? 나는 그 회복이라는 선물을 안고 새로운 병원의 문을 열었다.
그곳의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했다. 나를 예뻐해 주며 나에게만 간식을 몰래 챙겨주던 언니도 있었고(그 일로 다른 애들이 시샘해 싸웠던 적은 조금 미안하다.) 내가 좋아하던 슬라임 영상이 나오는 TV방도 있었다. (정말 그 방의 용도가 그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편리한 시설들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운동 역시 편하게 진행되었다. 선생님들은 나를 아픈 아이로 여기고 힘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내 회복이 더딘 이유가 어쩌면, ‘내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운동을 안 하는 게 마냥 좋았던 철없는 7살이었다. (사실 지금도 가끔 운동을 피하려고 잔꾀를 부리긴 한다. 7살이나 15살이나… 크면 얼마나 크게 다를까?)
그렇게 ‘편한 병원생활’은 내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전 병동에서 달리는 말처럼 빠르게 회복되던 내 모습이 사라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린 마음에 수도 없이 후회했고, 엄마에게 왜 이 병원으로 왔느냐며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병원을 선택하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애썼는지를 말이다. (내 투덜거림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모르고 한 원망 섞인 말을 한 기억이 엄마 머릿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덮어두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했고, 그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갔다.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놀고, 싸우고, 삐지고…(특히 '삐짐'이라는 감정은 내 7살 시절의 감정 중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일곱 살을 마무리해 갔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 가족은 병원과 학교, 교회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나는 병원과 유치원을 오갔고, 정말 오랜만에 간 유치원에서 많은 걸 느꼈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이미 각자의 새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설 틈은 보이지 않아 속상했지만, 오히려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친구도 있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이 생생히 떠오르는 건 내 기억력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그 기억이 너무 특별해서일까?)
또한 나는 원래 운동신경이 좋았다. 유치원 대표 계주선수로 뽑히곤 했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내가 줄넘기 시간에 그저 구경만 해야 했다는 건 꽤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 앞에는 훨씬 더 넓고 큰 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무슨 어려움이 오든 간에 나는 그 길을 걸어야만 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의 나를 꿈꾸며 이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것 같다. 미래를 꿈꾸다… 어찌 보면 허상일지라도 난 그것을 소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소망은 단단한 뿌리가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잘 버텨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