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병동: 환자지만 아이였습니다.

1부-환자로 살아가기

by 기도집주인딸

중환자실 다음 나의 목적지는 어린이병동이었다. 그곳에는 나뿐 아니라 정말 아픈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길다란 통로 사이, 살짝 열려 있는 병실 문 너머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보호자들의 한숨소리를 숨어있었다. (난 그곳에서 애초에 그 심정은 감추기 불가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인실, 2인실, 5인실(혹은 6인실)까지 다양한 병실을 거치며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러 환자들을 만났다. 어떤 아이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새빨갰고, 또 다른 아이는 머리를 밀고 전선 같은 장치를 머리에 붙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아이들이 어떤 병을 앓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병실이 꼭 침울한 곳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어린 나에게 병실은 내 가족,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공간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뇌출혈로 인해 편마비가 왔다. 왼쪽 팔과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의사가 말했다. 7살의 나이에 닥친 건 너무 큰 일이라,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조차 바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게 답답하고 속상했다.

원래 왼손잡이였던 나는 어느 날 오른손에 연필을 쥐어보았다. 글씨가 엉망이었지만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읽고 쓰는 걸 좋아했던 나는, 병실에서도 종이 대신 휴지를 펴고 또박또박 연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꼭 미래를 위해서라기보단,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기에 그러했다.)

그렇게 어린이병동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내 기억 속 남은 육체적 아픔은 주사가 전부였던 듯하다. 불편한 침대와 맛없는 밥이 내게 큰 해를 끼치지 못했고, 난 그저, 꽤 자주 내 팔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주삿바늘만 견뎌내면 됐다. 그 당시의 겪었던 아픔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더 힘든 짐을 지고 간 건 엄마와 아빠였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잠조차 편히 자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그 어린이병동에 있을지라도 난 항상 잘 웃는 아이로 지내왔다. 특히나 휠체어를 끌고(내가 끈 건 아니지만) 휴게실로 가 활짝 웃는 사진은 정말 아직도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7살짜리의 환하고 이쁜 웃음은 정말 4월의 봄꽃 같다.

그렇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환자라 불리는 아이들이 존재하였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환자란 단어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각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가 이 시간 너머에 존재할 것이고 나 역시 그러하듯 지금의 아픔은 모든 인간이 겪는 하나의 과정이자 좋은 토양으로 성장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이 말만큼은 사실이다. 눈에 띄게 변화하진 않더라도 아주 조금은 정말 조금은 달라지고 있을 거다.

오늘도 아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언젠가는 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뿐이라고 인생 고작 15년 차인 내가 우습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