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특이한 아이로 살아가기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고작 1m 20cm밖에 안 되는 작은 몸뚱이를 이끌고) 나는 초등학교라는 세상에 발을 들였다. 유치원을 벗어나 마주한 초등학교는 어린 나에게 꽤나 큰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받아쓰기 100점짜리 시험지, 그림일기 위에 반짝이 도장 세 개,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여느 여덟 살의 기쁨이 내게도 하나둘 찾아왔다.
학교 첫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내 상황과 도움의 필요를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놀랍게도 순수한 여덟 살 아이들은 내게 차별이라는 벽도, 동정이라는 색안경도 씌우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친구로 내게 다가와 주었다.
1학년은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2학년이 된 나는, 국어를 사랑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었고, 그때 처음 ‘시인’이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시인은 책 뒤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니까. 내 장애가 그 일에 방해가 되진 않을 거라 믿었다.)
나의 초등시절 중 가장 또렷한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년 전인 (와, 나 진짜 나이 많이 먹었다) 바로 그 2학년 시절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더 잘 지내고 싶어 열심히 놀았고,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발표에 진심을 다했다. 그런 노력은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몇몇 영역은 내게 슬픔을 건네주었다. 체육 시간 같은 곳에서, 나는 자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곤 했다. 나는 어디서든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소망을 품진 않나?)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나를 외면했다. 내 부족함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린 나는 그 모든 이유를 오직 '장애' 때문이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그때의 나는, 그냥 작고 여린, 그저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픔을 마음 깊숙한 곳에 눌러 담은 채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려 애썼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줄 때면 정말 기뻤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는 내가 크면 당연히 위인전에 나올 줄 알았다.)
나는 그저 어린아이였고, 다행히도 내겐 아직 더 자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성장판이 열려 있었다. 그 시간 속 감정과 사건들은, 지금은 어느새 색 바랜 앨범처럼 조용히 내 의식 끝에 꽂혀 있다. 나는 크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크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족한 나에게 매일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되새기는 한마디.
"오늘의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그 부족함을 한 스푼 덜어낸 채 다시 걷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