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특이한 아이로 살아가기
고학년이 된 나는 ‘학교 선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키도, 생각도 참 많이 자랐다. (물론 더 자라야 하는 건 맞다. 키도 생각도 둘 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아지고, 왼손을 쓰지 못한 지도 오래되다 보니 조금씩 곤란한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나보다 어린, 철없는 아이들의 질문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언니는 왜 한 손만 써?”부터 시작해서 “누나, 저쪽 손 못 펴? 한 번만 펴봐.”라는 말까지. 나는 그럴 때면 항상 할 말을 잃었다. (잠깐, 나도 한번 펴보고 싶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어른들의 한숨 소리, 무심한 혀차는 소리,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내 귀에 더 또렷하게 박혔다. 마치 누가 내 마음에 작정하고 못을 박듯이.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속상해지고 답답해졌다. 내 몸에 달린 이 손을 나조차 움직일 수 없는데, 도대체 이 손을 ‘움직이는 날’이라는 게 오기나 할까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나는 심지어 꿈에서도 주도권을 잃었다. 현실에서도 못 쓰는 왼손은 꿈속에서도 여전히 못 썼고, 거기서조차 사람들은 내 장애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정상이 아닌 아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어 종종 남몰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나는 당당하게 다짐했다.
“중학교 가기 전까진 왼손 쓸 수 있게 운동을 열심히 할 거야!” (하긴… 그땐 서울대도 아무나 갈 수 있는 줄 알았으니, 뭐든 가능할 거라 믿었지.)
하지만 고학년이 되자, 어린 시절의 그 다짐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 시절은 꽤나 힘들었다.
나는 내 어려움을 아무도 진짜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외로웠고,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는 억울함이 자꾸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고, 결국 나는 돈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아이가 되었다. (혹시 미래에 치료비가 많이 들까 봐, 사소한 것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아주 현실적인 걱정.)
그렇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땐, 나의 장애를 까맣게 잊기도 했고, 오히려 나는 내 스스로에게 ‘특별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특이한 거랑 특별한 건 다르다. 그리고 나는… 특별 쪽에 가깝다고 믿고 싶다.)
세상에는 이유도, 원인도, 설명도 차고 넘치는 괴로움과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자꾸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기보단,
그 상황까지도 껴안고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마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회복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연습의 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 그 연습은 진행 중이다. 나는 손의 박힌 못이 아닌 나무를 키울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