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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어려운 말들: 도와주세요.

2부-특이한 아이로 살아가기

by 기도집주인딸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 말은 곧, 진짜 청소년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짜증과 예민함은 내 힘으로 조절하기 아주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확실히 부모님보다는 친구, 아니면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다. (엄마 아빠는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할까, 그땐 정말 이해 안 됐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부모님 없이는 안 되는 아이였다는 거다. 그게 내 자존심을 계속 건드렸다. 여전히 혼자 할 수 없는 게 많았다. 머리 묶기, 손톱 깎기, 악기 연주하기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 (사소하지만, 나에겐 매일 부딪히는 큰 벽이었다.) 이런 걸 친구에게 부탁하는 건 점점 어려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다들 도와주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고, 나도 괜히 ‘특별 관리 대상’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선뜻 부탁을 못 했다. 그 결과는? 그냥 불편함을 꾹 참고 지내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울적해졌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세상에 대한 반감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머리 묶기 하나 때문에 아침마다 짜증이 났고, 손톱을 혼자 깍지 못하기에 생기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악기 하나쯤은 주변 친구들은 다 다루지만, 왼손 때문에 나는 악기를 배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솔직히 피아노 치고 기타 치는 애들 보면 많이 부러웠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이 왜 나한텐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날 더 힘들게 한 건,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못 하는 걸 하는 아이’였다는 거다. 세네 살에 한글을 뗐고, 받아쓰기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고 선생님들께는 늘 칭찬을 받았다. 항상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나는 남들보다 우수한 아이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 세상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착각이야.” 정말 하고 싶은 건 차고 넘쳤는데,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글쓰기였다. 글은 내 자랑이었고, 유일한 숨 쉴 구멍이었다. 글이 없었다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과 나의 약함이 끊임없이 날 눌렀고, 나는 그걸 이길 힘이 없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그때는 내가 부족한 아이가 아닌 오히려 대단한 아이가 되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평범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겉으론 그럴듯하게 평범해 보였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특이한 아이였다. 대신 그 마음을 글로 쏟았다. 그 글들은, 특이한 아이로 살고 싶지 않은 특이한 아이의 외침이자, 내 가장 솔직한 기록이었다. 종이 위에서만큼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점점, 진짜 나를 알게 되었다. (스포일러 하나. 그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마 한동안은 계속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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