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특이한 아이로 살아가기
나는 몸이 자라고, 생각이 커졌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3학년이던 해에, 모두의 일상을 뒤흔든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3학년이던 해는 2020년, 바로 코로나가 초등학교를 찾아왔던 해였다.
개학은 미뤄졌고, 나는 단순히 ‘한두 주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솔직히 그땐 진짜 그렇게 믿었다. 한두 주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간은 흘러도 학교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나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온라인 화면 속에서 처음 만났다. (아, 그때 우리 모두는 위에만 겉옷 입고 바지는 잠옷을 안 갈아입었다는 사실.)
그렇게 인간 대 인간보단 화면 대 화면으로 대면해서일까. 내게 3, 4학년은 학교보다는 ‘가족’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세상은 그 시기를 ‘교육의 위기’라고 불렀고, 아이들의 기초 학습이 무너졌다고 했다. (뉴스에서는 하루에 한 번은 ‘교육 붕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지 못한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가족과의 관계가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진짜 스승은 학교 선생님이 아닌, 부모님이고 그 부모님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수학 문제는 내가 엄마 아빠보다 잘 풀 때도 있지만, 선생님의 역할은 수학이 다는 아니니까.)
이렇게 말하면 많은 어른들은 내가 아직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아이로 보겠지만, 나는 그 시간을 10살의 눈으로, 온몸으로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많다. 그 필요는 옷일 수도 있고, 밥일 수도 있고, 공부일 수도 있고, 혼자만의 공간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각자 다른 결핍을 안고 있고, 부모가 그 모든 걸 다 채워줄 순 없다. (부모님도 인간이니까. 부모님도 그 완전한 필요를 충족받아본 적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시기,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은 완벽함과는 다른 것이다. 완전함은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없는 것이고, 온전함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머물러주는 사랑이니까.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진짜 완전한 사랑 아닐까.)
엄마, 아빠가 나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은 달랐다. 아빠와 함께 퍼즐을 맞췄던 시간, 엄마가 서툰 솜씨로 음식을 해주던 그 손길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엄마 음식 실력은 지금은 내겐 최고 요리사다. 엄마, 사랑해.) 그 작고 따뜻한 조각들이 쌓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결핍보다 충만을 느꼈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그 행복은 나의 성적과 친구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진짜다. 행복하면 시험도 잘 본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에게 나는 특이한 아이가 아니라, 특별한 아이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