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미래

by Aqua J

1950년대, 뉴욕의 한 공연장.

피아노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연주자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다. 4분 33초 동안이나.

존 케이지의 4‘33이란 작품은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관객석에서 들리는 불편함과 어색함, 기이함과 자연스러운 대화들이 복잡한 감정적 참여를 유도한다. 1962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 남자가 이번에는 독일에서 머리에 먹물을 묻히고 붓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한다. 마네가 살롱에서 받았던 첫 싸늘한 반응보다는 호의적이었을 테지만, 대부분 혁신이 그렇듯 관객들의 감정적 전이와 변화는 편하지 않다. 한편, 뉴욕의 다른 극장에서는 오노 요코가 자신의 몸과 드레스의 앞날(?)을 관객들에게 맡기고 있었으니, 1964년 오노 요코 컷 피스(cut piece)다. 관객이 오노 요코가 입고 있던 드레스를 직접 가위로 잘라내는 젠더와 권위에 대한, 수행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여성 운동과 자유에의 의지, 평화 운동 등 플럭서스 그룹은 전통 예술의 개념에 도전하는 수행성의 미학에 부합하는 사조라 할 수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고 필요한 방향으로 인류의 진보는 예술에서도 드러난다.

얼마 전 나는 디지털 아트 전시에서 인터랙티브 아트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전시에서 관객이 화면에 터치하거나, 몸을 움직여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작품이었다. 그때 작품 자체가 관객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단순히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관객이 행위자가 되어 작품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플럭서스의 정신을 체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동을 주었고, 작품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그 의미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수행성의 미학이 무엇인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예술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참여와 행위가 예술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상과 오브젝트, 관객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해체되는 참여와 행위의 관계 연장선 위에 오늘날 현대의 인터랙티브 미술이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전통과 권위에 대한 도전과 실험은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더 넓은 분야에서 수행성의 미학으로 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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