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해인사 장경판전입니까?

by 김 몽

참석자:


김중* : 한국 현대건축 1세대,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시적 조형미 추구


헤르조*: 스위스 건축가, 재료의 물성과 혁신적 표피 탐구


사회자




사회자: 안녕하십니까. 일요 포럼의 사회를 진행하게 된 짱구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 건축을 대표하시는 김중*선생님, 그리고 세계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계신 헤르조*을 모셨습니다.

두 분 모두 각자의 건축 철학으로 지속가능한 최고의 건축물을 꼽으실 때, 놀랍게도 공통적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법보건축 '해인사 장경판전'을 언급하셨습니다. 오늘 토론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왜 장경판전입니까?"


먼저 헤르조*께 여쭙겠습니다. 최첨단 기술과 재료를 다루시는 입장에서, 수백 년 전 목조 건축물인 장경판전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습니까?



헤르조*: 저희에게 장경판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로운 건축(Intelligent Architecture)'의 정수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연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활용한 수동적 환경 제어 방식입니다. 정교하게 계획된 창의 크기와 위치, 바닥 아래 숯과 흙, 소금의 사용은 현대의 어떤 공조 시스템보다 더 정교하게 습도와 통풍을 조절하여 8만 대장경을 수백 년간 보존해 왔습니다. 이는 재료의 물성(Materiality)과 자연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장경판전의 표피(Facade)는 단순해 보이지만, 각 창의 크기와 살의 간격 하나하나가 빛과 바람을 조절하는 '살아있는 막(Living Membrane)'과 같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건축의 본질적 기능과 물성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장경판전은 완벽한 교과서입니다.



건물은 대부분 남향으로 배치되어 햇빛의 이점을 살리면서도, 창의 크기와 설계를 통해 그 양을 조절합니다. 장경판전의 각 동(棟)에서 남쪽 창은 크고 아래쪽에, 북쪽 창은 작고 위쪽에 위치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닙니다. 여름철 남동풍이 불어올 때, 남쪽의 큰 창으로 신선하고 상대적으로 건조한 공기가 유입됩니다. 이 공기는 목판 사이를 지나며 내부의 습기를 머금고 더워져 가벼워지고, 자연스럽게 상승하여 북쪽의 작은 창으로 빠져나간다. 이것이 바로 자연적인 대류 현상을 극대화한 ‘굴뚝 효과(chimney effect)’입니다.

앞뒤 건물사이의 마당은 또한 대류의 완충역할을 합니다.


김중*: 장경판전 창의 핵심은 단연 살창(창살), 즉 일종의 루버(louver) 시스템입니다. 이 살창은 일정한 간격과 각도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살창은 직사광선이 목판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줍니다. 강한 햇빛은 목판의 변형과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살창을 통과한 빛은 부드럽게 확산되어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면서도 자외선의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살창은 또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는 역할도 합니다. 강한 바람이 직접 목판에 부딪히는 것을 막고, 부드러운 공기의 흐름으로 바꾸어 내부 전체에 고르게 퍼지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으면서도 공기의 순환은 가능하게 하는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남쪽 창의 살창과 북쪽 창의 살창은 그 간격이나 형태가 미묘하게 다를 수 있으며, 이는 계절과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한 선조들의 깊은 통찰을 반영합니다.



사회자: 자연 시스템을 활용한 수동적 환경 제어, 그리고 살아있는 막으로서의 표피. 정말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김중* 선생님의 건축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시적인 감수성이 장경판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김중*: 저는 장경판전에서 목적에 충실한 순수함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장경판전은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판을 안전하게 보존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지어졌죠. 하지만 그 단순함과 소박함 속에 담긴 비례와 질서,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는 그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 강력한 울림을 줍니다. 창살 하나, 기둥 하나에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습니다.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제가 추구하는, 군더더기 없이 본질에 다가서는 건축, 즉 기능이 형태를 낳고 그 형태가 시적인 감동을 주는 건축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르 코르뷔지에 스승님께서도 강조하셨던 '정직한 건축(Honest Architecture)'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헤르조*: 김중*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 '익명성'과 '목적성'이 오히려 시대를 초월하는 강렬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장소와 프로그램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건축적 해법을 도출하려 노력합니다. 장경판전은 그 과정이 가장 순수하게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김중*: 맞습니다. 장경판전은 건축이 자연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진솔함으로, 인위적인 조작보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름으로써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지요. 결국 장경판전은 '시간을 견디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유행을 따르거나 순간의 감각에 기댄 건축이 아닌, 보편적인 지혜와 본질적인 가치에 기반한 건축만이 시간을 넘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요.


헤르*: 수백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여전히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축이 단순히 시각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사용자의 본질적인 필요에 응답할 때 비로소 시간을 초월하는 생명력을 갖게 됨을 증명합니다. 제가 늘 강조했던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에 대한 완벽한 해답처럼 보입니다. 장경판전은 첨단 기술 없이도 자연과의 조화,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목적에 대한 순수한 헌신만으로도 위대한 건축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두 분 거장들의 말씀을 들으니 장경판전이 왜 위대한 건축물인지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목적에 충실한 순수성, 그리고 비움과 절제를 통한 본질의 구현. 이 모든 것이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르만 헤르츠버그의 건축 수업은 늘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 사람들이 공간과 맺는 관계에서 시작하곤 했다. 문손잡이의 높이, 계단의 폭, 창문의 위치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만약 헤르츠버그와 한국 현대건축1세대 고 김중업 건축가가 해인사 장경판전에 들렀다면, 그들은 아마 말없이 서 있는 이 건물에게서 가장 심오한 건축적 가르침을 발견했을 것이란 가정하에 가상의 토론을 구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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