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입관이 뭐야? - 1편

할머니와 나 그리고 장례

by 옹달샘

입관이 뭐야?



지난겨울 친한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

장례식에 이틀을 갔는데 이튿날엔 친구가 우리에게 걸어오며 방금 입관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때 입관이라는 게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벌써 슬퍼져 감히 상상하려고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일로 닥치고서야 '입관'이란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비로소 알게 된 입관식.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사실적인 것들이었다.


체온이 없어진 할머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뵙는 자리, 나의 슬픔을 온전히 느껴야만 하는 자리, 사랑하는 가족들의 슬픔을 직면해야만 하는 자리 그 와중에 나를 경건하게 바로잡아야 하는 자리.

사실 멋모르고 들어갔기에 더 훌륭히 해낸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 한 친구의 할머니가 며칠 전 돌아가셔서 입관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들어가니 무섭지도 않았고 들어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들어가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다른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참여했다고 했는데, 나 역시 이 친구의 경험에 의지한 채 들어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망설이거나 참석하지 않는 친척들도 아무도 없었다.


입관식은 오전에 진행되었다.

가족 친척들 모두가 경건한 마음을 잡고 들어갔다.

처음 문을 통과하면 마치 취조실처럼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 할머니가 누워계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예쁘게 화장도 해주신다. 더러 이상하게 화장을 해놓는 곳이 있다던데 할머니 장례식장의 화장 솜씨는 뛰어났다. 정말 아리땁게 고우셨고 그 모습을 보는데 유채꽃밭을 뛰어다니는 20대 소녀의 할머니가 연상됐다. 여리고 어린 소녀, 이렇게 여성스럽게 꾸민 할머니의 모습이 기분 좋으면서도 살아계실 때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나를 아리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알게 된 나에게 대한 사실인데, 나는 사실 죽음을 생각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벌써 4년 전이지만 죽음 앞에서 울부짖고 기도하고 공황장애 증상까지 겪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후부터인 건지 원래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발현되는 건지, 나는 '체온'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다. 살아있다는 증거를 체온으로 느끼는 사람이라서 평소에 부모님이나 친구와 접촉할 때에도 종종 '따뜻하다' , '살아있다'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그 사람을 온전히 느끼려 애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차갑고 딱딱한 몸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만질 수 있는 할머니의 육체는 너무 만지고 싶은 양가감정을 갖고 있었다. 우리 오빠는 차가워진 할머니와 뽀뽀도 했고 고모들도 엄마도 얼굴을 계속 만지셨다. 나도 만지고 싶고 뽀뽀하고 느끼고 싶었지만 차마 나의 용기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를 하려나?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따뜻한 할머니를 기억하고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할머니는 살아계신 상태로 남기기 위한 나의 선택이자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싶진 않나 보다.

나는 꽃신을 신은 발을 만졌고 수의를 입으신 옷 위로 할머니를 느꼈다. 아주 단단했다. 그 안에 어떤 처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에 기대 안으니 몸은 아주 단단했다. 옷을 입은 상태이기에 온도는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참 평온해 보이셨다. 지금까지 병원에 있던 할머니의 모습도 아니었고 시골에서 할머니를 보던 모습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계시는 듯 편안한 표정이셨다. 입관식에서 할머니를 뵙기 전까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할머니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좀 퉁퉁 부은 듯하기도 하고 포토샵을 한 것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는 듯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뵈니 할머니의 원래 모습은 영정사진 속 얼굴과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뵙던 얼굴은 삶 속에서 시간의 변화에 적응한 얼굴과 일상 속 크고 작은 번뇌 을 가진 모습이셨던 것이다. 그때 또다시 많은 깨우침을 겪었다.


입관에 들어가면 여러 절차를 거친다. 물론 그곳에서 자세히 안내해 주시고 정작 들어가면 정신없이 우는 바람에 기억조차 남지 않는다.

그곳의 상황을 기억해 나열해 본다. 내가 가장 유심히 지켜본 건 아빠였다. 가진 건 짊어진 책임뿐인 장남인 아빠를 돌볼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다. 그리고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딸이기에 아빠를 지켜주려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용기 있는 딸은 되지 못하지 그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그들 살피는 게 나의 몫이었다. 아빠는 울지 않았다. 그 와중에 모든 동생들과 친척, 그리고 조카들, 우리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까? 아빠는 무리의 대표처럼 이 슬픈 행사에 마냥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고 본인이 유일하게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책임 하에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을 해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생각을 잃었던 것 같다. 사실 아빠가 내 앞에서 울지 않아서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다행이었다. 만약 아빠가 정신을 놓고 우신다면 나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아빠와 성격이 너무 닮은 탓일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다행이면서도 또 슬펐다. 그럼 우리 아빠는 누가 위로해 주고 어디에 기댈까? 엄마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며느리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슬퍼하고 울었다. 딸들보다도 더. 할머니는 가시기 전날까지 찾던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엄마다. 할머니는 말씀이 많지 않으시고 고모들도 할머니를 보살피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말이 많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정이 정말 많고 착하고 수다쟁이다. 할머니를 보면 어색해서라도 말을 걸고 이야기보따리를 가져와 병아리처럼 떠든다. 그러니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너무 사랑하셨다. 내가 몽골에 간다는 이유로 엄마도 마지막에 일찍 뵙질 못했는데 그게 나에겐 어쩌면 조금 죄책감으로 남은 것 같다. 아무튼 우리 엄마는 장례식과 기도 내내 정말 내내 우셨다. 쓰러질까 봐 걱정이 될 정도로. 그리고 입관에서는 "어머니" 그리고 엄마 입에서 처음 들은 "엄마" 할머니에게 엄마라는 호칭은 쓰지 않았었는데 분명 엄마라고 하셨다. 그 이름을 외치며 끌어안고 바닥에 앉아 우셨다. 나는 사실 엄마의 그런 감정표현이 너무 깊고 솔직해서 종종 부담을 느낀다. 엄마가 너무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나는 중심을 잡고 감정을 절제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커서 늘 나는 감정을 숨겼던 것 같다. 그래서 늘 두려웠던 것이 가족의 죽음이다. 그때 내가 과연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떻게 엄마를 보듬고 어떻게 나의 슬픔도 안아주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닥친 그 상황이 지금이었고 역시나 엄마가 어떤 감정을 얼마큼 보일지 두려웠지만 이해했다. 너무나도 이해했고 고마웠다. 사실 며느리가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엄마도 정말 착하고 할머니도 그 마음을 알아주시는 현명하고 정 많은 좋은 분이셨다는 말이다. 그렇게 오열하는 엄마를 지켜보았다. 지켜보고 근처에 언제나 있어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슬픔에 대해 안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나는 아마 다시 태어나도 엄마만큼 예의 있고 착하고 좋은 사람은 되지도, 만나지도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오빠를 살펴봤다. 오빠는 울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참고 있었다. 오빠의 눈물이 그렇게나 마음 아플 줄이야. 여섯 살이나 많은 오빠이지만 우는 모습을 보니 아기 같았고 너무 안쓰러웠다. 오빠는 이전 글에도 계속 써왔지만 똑똑하고 착하고 다정한 그런 손자였다. 그리고 역시나 다정한 게 맞단 사실이 들었던 게,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느꼈지만 오빠가 가장 정성스럽고 다정했다. 뽀뽀, 말투, 내뱉는 말들, 행동, 생각 오로지 할머니를 위하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었다. 오빠는 표현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에게도 나보다 다정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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