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처음 뵙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 그리고 장례

by 옹달샘

장례 1일 차 오후.

우리는 할아버지를 할머니와 함께 모시기 위해 파묘를 진행했다.




27년 동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다.

1화에서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아빠 고3 때 돌아가셔서 전혀 뵌 적은 없다. 그렇지만 매 년 명절이면 우린 할아버지를 찾아 산소에 갔다. 때로는 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갔다. 걸어서 가면 할머니 집 뒷산을 통해 올라갈 수 있고 겨울이면 종종 노루를 만나기도 했다. 아빠가 '토끼 잡으러 가자~' 하면 그건 할아버지한테 가자는 말씀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오빠랑 나랑 또 할머니랑 그렇게 할아버지한테 손잡고 가는 길은 늘 즐거웠다. 나에겐 시골이 늘 빨리 가고 싶은 곳이었고 어릴 적엔 서울부터 영광까지 거치는 모든 지역을 적은 다음 이동하면서 하나씩 제쳐갈 만큼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 동네였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였지만 할머니가 늘 곁에 있으시니 할아버지가 가까웠고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제사기에 한 번도 제사가 슬프다는 감정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분명 친밀한 건 확실했다. 아빠의 아빠라는 상상 속 인물 정도로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런 할아버지를 만난다니.


10월 6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2-3시 사이 즈음이었을까.

밖에 할아버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친척들과 우리 가족은 쪼르르 나가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사실 그렇게 적나라하게 뵐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총총걸음으로 나갔더니 박스에 담긴 할아버지가 계셨다.

정말로 시중에 판매하는 허름한 '사과박스'에 차곡차곡인지 대충인지 모르게 담긴 할아버지의 유골. 제일 위에는 얼굴이 있었다.

첫째로 드는 감정은 죄송했다. 할아버지를 처음 뵙는데 갑작스레 등장해 발가벗은 몸을 쳐다보는 것 같았고 사과박스에 담긴 모습을 할아버지가 싫어하시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명색에 손자 손녀들과 만나는 첫자리인데 할아버지도 갖춰진(?) 멋진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지 않으셨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며 죄송합니다~ 란 생각으로 만나게 됐다.

두 번째로 드는 감정은 할아버지를 뵙고 나서 가장 지배하는 생각이었는데 바로 반갑다는 사실이었다. 할어버지라니. 나에게도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사실을 내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할아버지라는 글자에 갖춰 우리 할아버지는 그냥 명사 글자로서 '할아버지'라는 것이었는데. 형체가 있는 실존하는 분이셨다는 사실을 보니 그 반가움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할아버지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이로서 형태와 형체 그리고 시각이든 촉각이든 물리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감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다시 말하고 싶은데, 할아버지를 만난 게 어쩌면 이 장례 절차 전체에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세 번째로 드는 감정은 사과박스에 대한 충격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사과박스 한 줌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익히 들어봤다. 사실 그 사과박스라는 말이 비유하자면 사과박스처럼 사람이 작아진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아니, 정말 사과박스였다. 어떻게 사람을 사과박스에 담을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그곳에 담아도 괜찮은 걸까? 그래도 사람이었는데 예를 지켜드려서 모셔야 하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며 나의 미래도 우리 부모님의 미래도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사람이라는 것은 따뜻할 때 그 의미가 있으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과박스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유골을 처음 봤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종종 폼페이전 미라나 해골을 봤던 경험이 있지만 그건 사실 '우와, 그렇구나' 정도였지 진지한 사람이구나 생각은 든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의 유골을 보니 빤히 보게 되더라. 할아버지는 앞니 두 개가 빠져있었다. 그리고 뼈의 길이를 보아서는 키가 크시진 않았던 것 같다. 유골의 상태는 깨끗했고 우리 할아버지라 좋았다. 그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사랑이 흘렀다.


보통 유골을 보면 무섭기도 한다던데 전혀 무섭거나 두려운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무섭거나 쭈뼛 이는 머뭇거릴 것 같은 생각은 없었다. 첫 만남에 긴장하며 달려 나갔고 그것의 배로 반갑고 행복했다. 할머니 덕에 할아버지도 만나게 되고 우리 할머니는 최고다!


그렇게 5분간의 할아버지와 인사를 마치고 사과박스를 고이 접어 바람 부는 날씨에 날아갈까 돌멩이 하나를 올려두고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빠빠이~~"




4화. 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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