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첫 장례식 주인공

할머니와 나 그리고 장례

by 옹달샘

3일간의 장례식을 가졌다.

이번 화는 전반적인 3일 동안의 기록을 다루려고 한다.


나의 기억 속에는 두 번의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이 있다.

한 번은 2008년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라 나의 역할은 없었고 거의 기억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은 가장 최근의 기억. 1년이 채 안된 나의 사랑하는 친한 친구의 아버지의 장례식.

어려웠다. 학생~스물일곱이 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장례식 예절을 배워보지 않았고 가 본 경험이 거의 없어 굉장히 어려웠다고밖엔 표현을 할 수 없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이번 할머니 장례식을 겪으면서 그 친구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에 연락을 했다. 서툴렀던 내가 너무 보여서 스스로 후회가 되어서, 그 친구가 뭐를 바라고 있었을지 이제야 알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연락을 남겼다.

내 친구를 생각하면 상처에 떨어진 알코올의 느낌처럼 온몸이 저리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장례식은 어떻게 시작될까 궁금했는데 막상 겪고 보니 그냥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더라.

병원부터 장례까지 절차가 있고 우린 그 흐름에 잘 올라타 걸어가면 된다. 마치 무빙워크처럼.

역시 한국의 장례, 결혼 시스템 문화는 단연 최고의 효율과 체계성이다.


광주에서의 아침이 밝고 엄마는 아빠와 통화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오늘 새벽 1시경에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고, 나는 '아이고 고생 많으셨네'라는 한 마디와 한숨을 내뱉으며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할머니의 동네로 돌아가 장례식장을 치를 예정이다.

명절날 아침 몸을 단정히 정리하듯 우리 할머니를 만나기 전 몸을 깨끗하게 준비했다.

아빠는 이미 동네로 갔다가 우리는 데리러 광주로 오셨고 엄마를 잃은 아빠를 본 건 처음이었다.

사실 아빠를 만나기 전 조금 두려움 같은 떨림이 있었다. 늘 아빠는 나를 돌보셨고 실없는 장난을 치고, 아빠에겐 애교만 부리던 나였는데 그런 아빠와 나 사이에 닥친 진지하고 슬픈 상황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아플 당사자는 아빠이니까. 아빠와의 관계에서도 용기가 필요했다. 의젓한 모습으로 아빠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빠와 엉엉 울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를 위로하고 아빠의 마음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용기가 부족한 건지.

여하튼 정신없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그렇게 아빠에게 온기로서 위로를 주며 곁에 있어주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할머니가 엄마아빠와 함께 가서 직접 고르셨던 납골당에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드리니 자세히 안내해 주셨고 우리는 현재 산에 매장되어 있는 할아버지도 이관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절차와 방법도 친절히 안내받았다.

나의 묫자리를 내가 정해놓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하고 다행인 일이었다. 그것조차 안 해놨다면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우선 스스로 골라놓는다면 가고 싶은 곳에 모시는 것이니 자식 된 입장에서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정신없는 장례 상황에서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나도 나의 묫자리는 미리 생각을 해 두려고 한다.


오늘은 10월 7일, 추석 다음날이다.

예년처럼 우리는 추석이라 시골에 내려왔다. 분명 할머니 동네이지만 장소는 조금 다르다.

추석이 이렇게 적막하고 평화로웠던가? 늘 친척들 사이 북적이는 시골집에 있다가 고요함만 남은 장례식장에 있으니 썩 적응이 쉽지 않다.

장례식장이 채 준비가 되기 전 먼저 도착했고 우리는 사무실에 앉아서 할머니의 빈소가 청소될 때까지 기다렸다. 빈소가 차려지는 모습, 늘 장례의 중간에 인사를 했었기 때문에 그 장소는 마치 그 사람의 집 같았는데. 사실 체계하에 잠시 사용하는 렌탈 공간일 뿐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청소 전까지 내 공간이 아니었던 모습을 봐서 그런지 더 외로웠다.

동네 분들 몇몇 그리고 시골에 내려왔던 친척들은 빈소가 차려지기 전부터 오시기도 하셨다. 친했던 동네 할머니(이하 파프리카 할머니)는 우셨다. 늘 만나면 내 손을 잡으시면서 '아이고 우리 누구 할머니가 맨날 우리 누구 얘기만 하면서 이뻐 죽어'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나를 주시려고 맨날 음식도 사시고 하신다며 늘 할머니의 사랑을 나에게 알려주시던 파프리카 할머니. 한 때 파프리카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가 안 예쁘다고 하셨다고 할머니가 이르셔서 내 침대에서 혼자 열을 냈던 적도 있지만 말이다 ㅎㅎ.


금세 빈소는 차려졌고 나는 생에 첫 상복을 입게 되었다.

생각보다 상복을 입은 내 모습은 맘에 들었고 상복은 꽤나 더웠다. 리본도 하얀 단색이 아닌 중간에 검정 줄이 그어진 리본 실삔이었다. 상복을 입고서도 미모의 에티튜드는 버릴 수 없어 혼자 사진도 찍으며 괜히 철없이 할머니 앞에서 애교도 떨어보았다. 추석 내내 할머니와 함께 있으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 같아서 홀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상복이 슬플 수만은 없잖아! 할머니에게 기억된 나는 철든 애교쟁이 손녀이기에 할머니와의 기억을 마지막까지 슬픔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3일간의 장례식 절차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1일 차. 빈소 차리기 & 할아버지 파묘 및 유골 만남 & 조문객 맞이

2일 차. 오전 입관 & 조문객 맞이

3일 차. 화장 & 납골 안치 & 장례식 정리


장례식은 정말 바쁘고 정신이 없다. 많은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더군다나 상조회사의 직원분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으면 일을 손님 식사 대접과 청소를 도와드려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우리는 손자 손녀 손부까지 모두 열셋이기 때문에 직원을 한 분 고용하고 우리가 도왔다. 그래서 덕분인지 더욱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간 장례절차.


앞으로의 글에선 할아버지와의 만남, 입관, 화장부터 납골당까지 그 이야기들을 한 편씩 나눠서 하고자 한다.


4화. 파묘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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