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36.5도는 영원하지 않아

할머니와 나 그리고 장례

by 옹달샘

비가 오락가락 했던 아득했던 밤에

마침내 모두와의 안녕을 마치신 할머니는 새벽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2화. 영원한 작별


10월 6일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출국 7시간을 앞둔 나는 마지막 고민을 했다.

천 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10일 연속 공휴일, 그리고 오래전 준비한 여행, 바쁜 친구들과 마음 모아 잡은 시간, 열심히 벌어 투자한 돈까지. 망설일 수 있는 요소가 여럿 있었지만 사실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가기 싫다!' 물리적인 요소 때문에 아까울 뿐이지 사실 마음은 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보고싶었고 5박 6일이라는 일정은 불안함을 해소하고 할머니에게 돌아가는 결정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사유였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 취소를 결정했고 때마침 아빠의 전화가 들어왔다.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의사 선생님께서 할머니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 하셨으니 나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라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련도 사라졌고 빨리 할머니를 보러 가야지. 나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지만, 당황스럽게도 여행 6시간 전에 체크인을 돌연 취소하고, 보험을 철회하고, 항공권까지 환불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 길로 광주행 KTX 입석을 끊었다.

추석 당일이라 지방으로 가는 차 편을 예약하기엔 하늘의 별따기였다. 다행히도 1시간 반 후 출발하는 입석 티켓팅에 성공해서 인천공항이 아닌 용산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KTX 안 창문에 서린 김에 적힌 글씨가 생생하다. '꿈에서도 만나'. 나도 모르게 가는 내내 할머니와의 작별을 준비한 것 같다.

27년 시골을 다니며 가장 적응되지 않는 마음으로 주저하는 나를, 기차는 내 발걸음을 대신해 광주로 이끌었다.




10시가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할머니와 정확히 2주 전 9월 21일 이 자리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제사는 늘 추석과 붙어있는 여름라 원래의 계획이라면 할머니를 퇴원시키고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원불교로 향해 할머니의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밥을 지어먹고 떠들고 밭을 가꾸는 우리를 보여드리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건강이 회복되지 못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짧은 만남을 거치고 헤어졌다. 그날도 눈물을 많이 훔쳤던 기억이 난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기력이 쇠하신 모습.. 우리 할머니는 누가 봐도 장군감에 힘도 장사이신데 왜 그런 분이 여기서 말할 기력조차 없이 누워계신건지, 그 총명하신 분이 어쩌다 말도 안 하시는 건지. 무엇보다 밥을 고봉으로 드시던 분이 한 술도 못 떠드시는 모습이 속상해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아주 불안했다. 노인들이 밥을 못 드시면 예후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불안함을 최고조로 달해갔다.

할머니는 늘 우리가 할머니 댁에 가면 먹을 것을 계속 주셨다. 그리고 어딘가를 가면 꼭 밥을 먹고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할머니는 우리의 식사를 걱정하며 '데려다가 먹어야'라고 하셨다. 밥을 배달해서 할머니와 함께 드시자는 이야기셨다. 우리는 말했다. "할머니 제사 가지 말고 할머니랑 있을까요~?"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제사는 가라고 하셨다. 그게 할머니가 바라시던 거였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 동안 할머니의 손을, 발을, 팔을, 얼굴을 만지고 입술에 볼에 뽀뽀를 수백 번 하고 나서야 겨우 헤어졌다.

그리고 2주가 흘러 만난 할머니와의 인사는 작별인사가 되었다.


병원에 들어선다.


아빠가 2주 전의 할머니와는 많이 다르니 놀리지 말라고 했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병원에 들어섰다.

이미 병원에는 연휴 시작부터 가있던 아빠가 있었고, 큰 고모네가 있었고 작은 아빠네가 와 있었다. 더 일찍 올 수 있었는데, 여행을 간다고 집에 있던 나를 향한 스스로의 혐오감과 죄책감이 조금 피어올라있었다.

2주 사이 우리 할머니뿐이던 집중치료병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 할머니의 자리는 들어서서 제일 오른편으로 창문 옆이다. 장기 투숙 중인 집중치료실 환자의 특권이다.


병실의 안쪽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만나니 내가 오는 사이 할머니는 힘겹게 죽을힘을 다해서 이겨내고 계셨다. 며칠 전 알 수 없는 경기를 일으키셨을 때 혀를 깨무셨다했는데 그때 깨무셨던 모양대로 혀는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물을 넘기기조차 힘들어하신다 하시더니 아예 입을 다무시지 못한 채 터질 듯이 퉁퉁 부은 혓바닥과 마를 대로 말라버린 혀. 겨우 들이키고 내쉬는 숨. 이미 눈은 초점이 없으셨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실까? 그럼에도 우린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 할머니 누구 왔어요~! 누구도 왔어요~! '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고 싶었고 내가 할머니에게서 받을 수 있는 걸 최대한 받고 싶었다 필사적으로 할머니를 눈에, 감각에 그리고 기억에 담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두려운 것은 할머니를 만지지 못한다는 것. '따뜻한 체온' 체온이 사라진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최대한 따뜻한 할머니를 만졌다. 병원에서 여기저기 주사를 맞느라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의 손과 팔을 만진다.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어 속상함이 나를 찌른다. 생각보다 손은 차가우셔서 만져드렸더니 따뜻해져 갔다. 우리 할머니의 손은 두껍고 단단하다 농사일을 많이 지으셔서 그러신 건데 늘 시골에 갈 때마다 아빠는 내가 가려운 곳이 있으면 할머니한테 가라고 했다. 할머니가 잘 긁어주신다며 나를 할머니 품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바라봤다. 헤어지는 동안 내내 할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며칠 전 아빠가 머리도 감겨주셨다고 했다. 파마를 하지 않은지 반년이 넘으신 짧은 머리칼은 굉장히 부드러웠고 여렸다. 나이가 들면 노인은 다시 아기가 된다는데 머리칼을 만져보니 할머니가 정말 아기가 될 준비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칼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 쓸었고 83년을 고생하신 할머니를 내가 보호자가 되어 고생했다 쓰다듬고 품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었다. 어른이 된 손녀가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과거를 위로하고 수고했다 표현해 주는 현재가 신기하고 행복했다. 내가 모르는 과거 속에서 할머니는 참으로 치열하게도 사셨을 것이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할머니의 볼과 입에 계속 뽀뽀를 했다. 퉁퉁 불은 채로 메말라있는 혓바닥을 오빠는 휴지에 물을 묻혀 촉촉하게 해 드렸다. 우리 오빠지만 참 다정하고 참 착하다. 정말이지 귀여운 손자로도 듬직하고 똑똑한 손자로도 부모에게 잘하는 효자로도 완벽한 손자다. 그래서 할머니는 마지막까지도 그 예쁜 손자를 너무 좋아하셨다.

한 달을 넘게 누워계셨지만 할머니는 더 예뻐지셨다.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우리 할머니 예쁘네'였다. 실제로 검버섯도 벗겨지시더라. 예쁘게 떠나셔서 할아버지를 만나실 준비를 하셨나 보다. 정말로 예뻤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이 어엿한 여자이길 바랐다. 자식과 농사 일과 모든 것을 챙기지 않고 그냥 사랑 속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아기에서 꼬마에서 청년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의 그 모든 과정에서의 존중받는 여성이길 바랐다. 그래서 연신 예쁘다를 외쳐드렸다. 예쁘니까 소중하고 소중하니 뽀뽀를 하고 또 불러보고 그 모든 걸 계속 반복했던 시간이었다.


23시 30분을 넘어갈 때 우리 아빠는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는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병원도 소등을 해야 하고 다른 환자들도 있었고 이제부턴 아빠와 큰고모가 지키는 시간이었다.

말로는 할머니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마음속에선 할머니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이길 바랐다.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할머니의 체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 그 따뜻함. 체온.

체온의 소중함을 간절히 느낀 시간이었다.




병실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이 있다면 그건 기계소리였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누군가 사망할 때 나는 그 삐. 삐. 삐. 삐--- 소리를 내는 기계. 그 소리가 아주 신경질 적으로 들렸다. 지금 일정한 박자에 맞춰 돌아가고 있는 기계가 어느 순간 삐- 한 음으로 끊어짐 없이 들릴 수 있다는 공포감. 언제 들릴지 모르는 그 공포감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부터 병원이 싫어졌고 병문안이 싫어졌고 그 기계가 정말 정말 싫어졌다.

할머니에게 또 온다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할머니 댁으로, 모텔로, 각자의 집으로 잠시 헤어졌고 숨 막히는 새벽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근처 모텔을 잡았고 엄마와 나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아빠와 장례식장에 관한 통화를 하시는 중이었다.




3화. 장례식장 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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