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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함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by 포카치아바타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온 대사다.


이 짧은 대사 한 줄이 몇 날 며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러 번 되뇌며 가슴이 뛰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랑은 다른 세상의 언어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이다.


바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발휘하는 사람.


빠르게 판단하고, 손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대처해야 하는 순간일수록


내 역량은 평소보다 두 배로 빛난다.


그래서인지 인정도, 기대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런 순간들이 지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깊이 지쳐 있다.



난 느리고 조용한 삶을 원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마음속에서는 늘 외치고 있다.


드라마 속 대사를 되뇌며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분주한 걸음 사이,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조용히, 온몸으로 그 바람을 느낀다.


담쟁이넝쿨에 담쟁이가 얽혀 있는 모습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어떤 힘으로 저 단단한 바위를 타고 오르고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괜스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한 달빛을 보면 이유 없이 행복해지고,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이면


코끝이 시리도록 추운 날씨에도


그 빛을 눈에 꼭 담아두고 싶어진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시시콜콜한 농담으로 실컷 웃는 게 더 좋다.


말장난에 눈물이 나도록 웃고 나면,


어쩐지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세상은 늘 ‘쓸모’를 묻는다.


이건 어떤 이득이 되는지, 얼마나 빨리 결과를 낼 수 있는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보다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지나가던 골목에서 마주한 한 송이 꽃,


쓸쓸한 퇴근길에 문득 올려다본 보름달,


누군가 건넨 유치한 농담 한 줄.


그런 것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을 가장 ‘살게’ 한다.



나는 여전히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가치를 말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세상이 말하는 ‘중요한 것들’ 틈에서


분명하게 내가 사랑하는 삶의 결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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