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 나는 좀 천재?

자동차 시동을 끄는 순간 싹 사라지는 아이디어들의 정체

by 프린스턴 표류기
a-dog-cart-by-jjhissey.jpg J.J. Hissey, Across England in a Dog-Cart (1891).

(이 글은 챗GPT가 어떻게 배우고 길들여지는지 이해하기 위한 서론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실험할 땐 출근 운전대만 잡으면 실험 아이디어가 샘솟더니, 글 좀 쓴다 하는 요즘엔 운전만 하면 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멋진 문장이 연달아 떠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감도 만땅이다. 나 이 정도인데 왜 여태 주눅 들어 살아왔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늘부터 난 이런 자세로 살 거야. 자신감! 그거 하나 없었을 뿐, 난 좀 멋진 걸?


한껏 차오른 ‘근자감’은 자동차 시동을 끄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싹 사라진다. 조금 전에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뭐였는 지 기억조차 안 난다. 억지로 두서없이 조각 나 버린 생각들을 떠올려보지만 김 빠진 맥주 같다. 그래서 운전 중 떠오르는 생각들은 원래 헛소리려니 하고 신경조차 꺼버린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 머릿속은?


머릿속에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게 있다고 한다. 날씨 좋은 날, 아는 길 운전하기처럼 별로 머리 쓸 일이 없을 때 켜지는 회로로, 주로 하는 일은 멍 때리기이다. 서로 연관 없는 기억들을 이어 보기도 하고, 과거를 추억해 보기도,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이때 어른의 뇌, 즉 논리 검열, 사실관계 조정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편안히 쉬신다. 내 마음은 어린아이가 된 듯 자유로이 뛰놀기 시작한다. 이때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고 생각하면 뇌는 도파민이라는 큰 보상을 내린다. 도파민은 “이거 잘 될 것 같아”라는 기대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늘 삼등이었는 데 이번엔 일등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의 짜릿함을 생각해 보라. 정말 큰 즐거움이다.


도파민이 범인이다.


도파민은 아마도 과거 원시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꼭 필요했던 신경전달물질이었을 것 같다. 사냥감을 봤을 때 잡고 싶다는 희망, 하면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을 올려주는 물질이다. 나보다 3-4배는 더 큰 물소인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펴보면 1미터는 될 큰 뿔에 찔리면 죽을 것 같다는 공포, 솔직히 뭐 하나 잘난 거 없는 내 처지. 이런 마음으로는 정말이지 물소에게 절대 못 덤벼든다. 이럴 때, "아냐, 하면 될 것 같아. 지금 상황 매우 좋아.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긍정 신호를 팍팍 주는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도파민이다.


내가 운전대만 잡으면 자칭 천재가 되는 건 이 도파민의 장난이다. 뇌가 쉬고 있는 데 갑자기 새 아이디어라는 먹잇감이 떠오른 거다. 잡아라! 도파민 팍팍 뿌려준다. "넌 할 수 있어. 넌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났단다."

"아닌데? 너 별론데?" 하면서 성적표 들고 올 전두엽을 잠깐 뒤로 밀어버린다.


전두엽은 떠오른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정리하고, 판단해서, 괜찮다고 여긴 정보를 해마로 넘겨 기억으로 저장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디어가 쓸모가 있는지 따져보고 실천하는 것도 전두엽의 일이다. 그런데 도파민이 강하게 작동하면 전두엽은 그 판단을 잠시 멈춘다. 아이디어가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했던 도파민은 몇 분이면 사라진다. 주차하고 짐 들고 차에서 내릴 즈음이면 내 뇌는 더 이상 도파민 뿌려진 멍 때림 상태가 아니다. 곧 있을 회의 생각에 스트레스가 치솟고, 머릿속은 공포 모드로 전환된다. 조금 전 떠올랐던 멋진 아이디어 따위는 깡그리 휘발된다.


그러니까 도파민은 말하자면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같은 거다. 옆에 장작이 없으면 그냥 잠깐 타다 꺼져버린다. 그러면 도파민 회로는 있으나마나한 건가? 그렇지 않다. 도파민은 ‘매우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불확실한 보상’에 더 강하게 나온다. 이것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힘, 창의력, 몰입, 성취의 연료이다.


성취를 위한 불꽃을 태울 장작은 전두엽이다. 거기까지 불길을 보내려면 나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도파민은 “너무너무 하고 싶다!” 에서 끝나지만 이때 몸을 움직여 한 개라도 실천하기 시작하면 뇌는 전두엽 장기 보상 회로를 켠다. 오랜 노력 뒤에 느껴지는 묵직한 뿌듯함이 그것이다. 그것이 진국이다. 이 즐거움에 조금 더 집중하면 더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도파민은 빠르고 강렬하다, 그러나 원시적이다.


그래도 솔직히 도파민의 쾌감은 정말 잊기 어렵다. 워낙 빠르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독의 원흉이기도 하다. 아무런 실천 회로를 돌리지 않고 도파민만 찾으면, 운전 중 자아도취, 유튜브 중독, 도박 중독, 쇼핑 중독에 빠지게 된다.


도파민 회로는 하등동물에게도 있어서, ‘먹자’, ‘도망치자’, ‘숨자’ 같은 즉각적인 생존 반응을 유도한다. 생물의 원시적인 반응이다. 고도의 사고 체계를 가진 인간이 ‘주로’ 의존할 감각은, 사실 아니다. 이에 반해 장기 보상 회로는 전두엽의 기능이 필수적이다. 당연히 이 회로는 영장류, 인간에게 특히 발달된 구조다. 어려운 일을 성취하려면 이 회로가 필수적이다. 원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아이디어는 반드시 우리 인간의 자랑, 전두엽 장기 보상 회로로 넘겨주자. 인내심을 갖고 실천해 보자. 인간답게 살아보자.


노력 끝에 찾아오는 행복이 진짜다.


그러니까 운전 중 내가 천재로 돌변했다면 최대한 빨리 바로 생각을 종이에 적어놨다가, 나중에 검토하고 발전시켜서, 실천할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프로젝트를 완수한 뿌듯함은 몇 시간 뒤, 며칠 뒤, 몇 달 뒤에야 올 수도 있지만 그 행복감은 도파민의 몇 분 간의 짜릿함과 달리 며칠, 몇 달, 몇 년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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