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사고 싶은 아저씨에게-에피쿠로스와의 상담

돈은 없는 데 차를 사고 싶다.

by 지식브로커



돈은 없는데 차를 사고 싶다.

나는 이제 결혼한 신혼이다. 아이는 없지만 곧 태어날 예정. 아직은 예정일은 한참 남았다. 그래서 뭔가 차를 사야 하나 고민이 들어 한밤 중, 거실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켠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또 슬금슬금 자동차 리뷰 영상 하나를 던져줬다. 새로 나온 외제 전기차 조용하고 빠르고, 디자인이 깔끔하다.


“그래, 전기차는 흰색이지. 기능 미쳤네..'


나도 모르게 중열이고는 자동차 알고리즘의 늪에 빠진다. 내가 살 것도 아닌데 유튜버와 함께 벌서 비교질이다. EV9, 테슬라 모델 3, 벤츠와 BMW까지 갔다 온다. 한참 자동차 리뷰어의 친근한 설명과 함께 욕망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늘이 날아와 내 욕망을 터트려버린다. 카카오뱅크 대출 광고 메시지다. 신용대출 광고였지만, 문득 내 머릿속에는 내가 남은 전세자금 대출이 떠오른다.



카카오뱅크 앱을 열어본다. 통장 잔액, 253,300원. 월급은 다음 주에 들어오는데, 모아두기 통장에서 50만 원만 빼야겠다. 아까 열었던 자동차 리뷰 유튜브가 떠들지만 시무룩하다. 마음 한 켠에서는 묻는다.

'어차피 다 할부로 사는 거야. 10년 탈 거 좋은 걸로 사자. 아니면 그냥 중고차 살까? 아냐. 어차피 새 차랑 천만 원 차이 밖에는 안 나네.'

사실 직장도 지하철과 버스로 다니고, 주말에는 차가 막혀서 엄두도 안 난다. 사실 딱히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짜증이 올라온다. 나는 왜 이렇게 가진 게 없지? 필요하면 사야 되는 거 아냐? 근데 왜 이 욕망이 죄책감처럼 느껴지지? 소유에 대한 욕망,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멀거리는 허무함. 나는 진짜 차가 필요한 걸까, 아니면 그냥 불필요한 욕망인가.



아무 말 말고, 에피쿠로스형에게 전화 걸어.


답답한 마음에 집 밖을 나선다. '소유'하니 에피쿠로스 형이 생각났다. 같은 과 동기인데, 예전에 시골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확행 소확행 하더니 진짜 회사 접고 내려가서 농사짓고, 뭐 나름 자급자족하면서 산다고한다. 학교 다닐 때는 꽤 친했는데...예전에 뭔가 취업준비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상담하면 꽤 명쾌한 답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형은 잘 지내나, 고민 상담이나 해볼까. 전화를 걸어본다.


나: 형, 잘 지내지? 나 영훈이야.


에피쿠로스: 아니 이게 누구야. 내가 뭐 쓸데없는 인연은 정리하려고 연락처는 다 정리했는데. 너는 남겨놨다.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결혼식도 못 가고 미안하다. 어떻게 별일 없지? 나는 여기 지방에 내랴와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농사도 짓고 소박하게 일하면서 살고 있어.


나: 응 나도 뭐.. 별 일은 없는데, 형은 나 형이 요새 소확행하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들어서. 나도 예전처럼 형한테 고민상담이나 해보려고.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말이야.


에피쿠로스: 괜찮아. 그래 어떤 고민이야?


나: 솔직히 결혼하고 나서 집은 전세대출로 어찌어찌했는데, 요새 차가 고민이야. 근데 대출금 갚고 어쩌고 하면 여유가 진짜 없는데… 다들 차를 갖고 있고, 나고 갖고 싶단 말이지. 솔직하게 차는 필수품은 아니지만, 있으면 편하잖아.


에피쿠로스: 편안함이란 건, 참 묘한 거지. 그게 진짜 네 몸을 편하게 하는 건지, 아니면 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지, 구분해 본 적은 있어?”


나: 난 직장도 버스랑 지하철 타고 다니거든. 솔직하게 말할게. 차는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냐. 다른 사람들도 차를 타니까 마음도 불안하게 만든다고 인정할게. 그래도 내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어.


에피쿠로스: 그래, 그 말 잘했다. 네 마음이 불안한 건 차 때문이 아니라, 남들도 타는데 ‘나만 없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그럼 내가 물어보자. 그 욕망은 네 배고픔처럼, 안 채우면 진짜 괴로운 거냐? 아니면 누가 옆에서 ‘야, 넌 왜 안 먹냐’고 쿡쿡 찌르니까 배고픈 척하게 되는 거니?” (형은 물을 마시는지 꿀꺽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욕망을 세 가지로 나눠.

하나,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 물, 음식, 잠.

둘, 자연적이지만 필수는 아닌 욕망 – 맛있는 음식, 향기로운 목욕.

셋,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망 – 명예, 돈, 사치품. ※1


차는 첫 번째일까? 두 번째일까? 아니면 세 번째일까? 잘 생각해 봐. 너의 평온을 깨뜨리는 건 차가 아니라, 비교하는 마음일 수 있으니까. ※2


나: 아무래도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이지 않을까. 아내와 나는 대중교통으로 충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있으면 편하다고 하더라고. 곧 아이도 태어날 예정이라 이제 필수품이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에피쿠로스: 아하, 아이가 태어난다고? 우선 축하한다. 난 몰랐네. 그럼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왜냐하면, ‘공포’와 ‘불안’을 없애는 게 가장 큰 쾌락이거든.” ※3


만약 차가 없어서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못 갈까 봐 불안하고, 비 오는 날 유모차 끌고 걷는 상상만 해도 괴롭다면.. 그건 단지 사치의 문제가 아니야. 그건 너의 ‘불안’을 없애줄 도구가 되는 거지. 그렇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게. 다만, 단 한 가지만은 기억해.


차는 너의 평온을 도울 도구일 뿐, 네 인생을 빛나게 해 줄 건 아니야. 네가 차를 타고 아이와 나들이 가서 행복하면, 차 때문이 아니라 함께 있는 순간이 좋은 거지. 그러니까 차가 있을 때나 없을 대나 즐길 수 있는 마음을 트레이닝해봐. 그러면 차가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나: 형, 성불했어? ㅎㅎ 무슨 산속에 있는 도인 같은 소리를 하네. 차가 불안을 없애줄 도구인 것 같긴 해. 근데 마음을 훈련하는 거랑 뭔 상관이야?


에피쿠로스: 하! 도인이라, 그 말 마음에 드는 걸! 나는 ‘복잡한 도’는 몰라도 ‘단순한 기쁨’은 누구보다 잘 알지. 네 말이 맞다. 차가 ‘불안을 줄여줄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가질 수 있다면 가지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마음의 훈련이 왜 필요하냐고? 잘 들어봐. 욕망은 배고픔이 아니라, 배가 고프다고 착각하는 습관이거든. ※4


차를 타도 또 다른 욕망이 찾아온다.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더 안정된 미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보다 뒤처지지 않는 나’라는 착각! 이제 네 마음속에 두 가지 방향이 있어.


하나, 차를 사서도 평온할 수 있는 길. 둘, 차를 가져도 계속 불안한 길. 두 길을 가르는 건 돈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미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습관이야.



나: 흠. 그래 형 말처럼 차를 가져도 계속 불안하겠지. 뭔가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으니까.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냐? 좋은 차를 갖고 싶어서 계속 일하고, 더 노력하는 거 아닐까? 이게 우리 가족을 더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하고, 나도 개인적인 성장에 대한 만족감도 느끼고.


에피쿠로스: 아아, 거기서 다들 착각을 하지. 더 좋은 걸 원하는 게 당연한 줄 알지만, 그건 네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야. 세상이 너한테 원하라고 세뇌한 거지.” ※6 좋은 차를 갖기 위해 일하고, 노력하고, 그래서 또 더 좋은 걸 갖고… 그러다 언제 쉬냐? 언제 만족하냐? 만족이란, 더 가질 때 오는 게 아니라, 더 안 가져도 괜찮다고 느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거야.


만약 네가 더 좋은 차를 꿈꾸며 행복하다면, 나는 뭐라 안 할게. 그게 네 ‘자연적 욕망’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즉, 그게 너를 망치거나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건 나도 환영하지. 근데 말이야. 한 번 너 자신한테 진심으로 물어봐.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차야? 아니면 차를 가진 내가 느낄 자존감, 안정감, 우월감이야?’


나: 형이랑 얘기하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내가 느낄 자존감, 안정감, 우월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세상이 날 세뇌했다고 하더라도 난 이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이지. 솔직하게 좋은 집과 차를 갖고 싶어. 100% 만족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계속 노력하는 게 우리 삶 아냐?


에피쿠로스:ㅎㅎ 너 내 친구였으면 나랑 같이 못 살겠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솔직하네. 근데 잘 들어봐. 너는 지금, 만족을 원하면서 동시에 욕망을 계속 키우는 길을 선택한 거야. 그건 마치 불을 끄고 싶다고 말하면서 장작을 계속 던지는 것과 같아. ※8


너는 자존감을 느끼고 싶어서 차를 원하지만, 차로 자존감을 얻는 순간, 그 자존감은 ‘차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되지. 그건 네 것이 아니라, 차의 껍데기에 불과해. 차가 없으면 자존감도 없어지나? 나는 네가 노력하는 걸 말리는 게 아니야. 다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목적이 네 마음의 평온이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덜 갖고도 웃을 수 있는 기술. 그게 있으면, 차가 있든 없든, 네 자존감은 바람 따라 흔들리지 않을 거야.


나: 그래. 마음의 평온이 중요하다는 건 인정. 근데 너무 스스로 이렇게 평온만 추구하다 보면 그냥 무소유로 스님처럼 사는 거 아냐? 나는 사회에 속해 있고, 자존감은 어느 정도 물질에 기반해. 만족과 욕망 두 가지 다 극단으로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에서 인정받을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에피쿠로스: 맞아. 세상 사는데 물질을 완전히 끊을 수 없지. 나는 ‘무소유’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적 소유’를 말한단다. 너의 삶이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적이지, 꼭 가난하거나 은둔자처럼 살라는 게 아니야.” ※10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은, 언젠가 그 세상이 너를 외면할 때 무너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 너를 인정하는 기준을 네 안에 두어. 사회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너의 기준을 가진 채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해. 나는 물질을 적당히 갖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찬양했단다. **자족(自足)**이란 단어를 들어봤지? 그건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스스로 결정하는 기술이야.” ※10


나: 그래, 그럼 형이 생각하는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목마르지 않게 결정하는 기술이 뭐야?


에피쿠로스: 좋아. 그건 "세 번 자문하기"야. 내가 추구하는 쾌락주의는 무조건 즐겨라가 아냐. 지혜롭게 즐겨라야.※11 나는 욕망이 올라올 때, 아래 세 가지를 꼭 물어보지.


일단, 이 욕망은 ‘자연적’인가? 내 몸이 진짜 원하는가? 아니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인가? 예를 들어 배고프거나 아기 돌봄은 ' 자연적'이야. 명품 시계, 남의 시선은 비자연적이지. 두 번째로, 이 욕망은 ‘필수적인가’? 안 채우면 내가 고통받을까? 불안해질까? 아프면 약, 피곤하면 잠자는 건 필수적이지. 더 큰 차, SNS 인증은 필수가 아냐. 마지막으로, 이걸 가졌을 때, 내 평온은 커지는가? 줄어드는가? 갖고 나서 더 큰 걱정이 생긴다면, 그건 진짜 쾌락이 아냐. 기술이란 건 도구야. 중요한 건 매일 한 번씩 써보는 거지.


나: 질문 세 가지 좋네. 근데 네 말처럼 하면 너무 소박한 삶을 살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사실 저렴한 중고차를 사야 하는 거 아닌가. 꼭 과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흔히 타는 자동차를 사고 싶어. 그래야 오히려 욕망이 줄어들 거 같은데? ㅎㅎ


에피쿠로스: 하, 네 말은 꼭 이거 같네. ‘나는 뷔페에 와서 과식하긴 싫은데, 그래도 남들만큼은 접시에 담아야겠어!’ 그게 바로 너를 괴롭히는 '비자연적인 욕망'이야. 그 욕망은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기대하는 너를 충족시키는 마음에서 오거든.


내가 말하는 소박함은 '가난함'이 아니라, 내가 가질 수 있지만 굳이 더 안 가지는 선택의 힘이지. 네가 돈과 여유가 있지만,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힘이지.


네가 ‘다른 사람도 흔히 타는 차’를 원한다면, 그게 네게 실용적이고 불안을 줄여준다면, 난 오케이야! 하지만 그 차가 네 자존심의 부스터로 쓰이려는 순간, 그건 너를 불안하게 만들 거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고. 차보다 중요한 건, 그 차를 탄 너의 마음이 스스로 만족하고 흔들리지 않는가야.


나: 역시 형이야. 깔끔하네. 그래 차는 차근차근 예정일 즈음에 사봐야겠다. 이제까지 좋은 얘기 들어서 미안한데, 아직도 욕망을 확인하기 어렵네. 사실 고민은 다들 요새 SUV를 사는데. 나도 사실 SUV를 고민하고 있어. 근데 기왕 사고 10년 탈 거면 좀 큰 차로 사도 되지 않을까. 물론 형 얘기에 따르면 그게 필수적인 건 아니야. 기왕이면..이라는 마음이지. 내 생각에는 형아가 또 부정적으로 얘기할 것 같은데.


에피쿠로스: 아니, 아니~ 이번엔 나도 고개를 끄덕이지! ‘기왕이면’이라는 말엔, 욕망과 이성이 사이좋게 손잡고 있는 모습이 있거든. 잘 들어. 내가 문제 삼는 건 SUV냐 경차냐가 아니야. 그 결정을 너 스스로 내렸느냐, 아니면 ‘남들 다 그러니까’에서 기운 결정이냐, 그 차이야.


내가 말한 쾌락주의는 무욕주의가 아니야. 쓸 수 있는 돈이 있고, 그 차가 네 삶을 실질적으로 편하게 해 줄 근거가 있다면, 큰 차를 사도 돼! 단, 그 차를 살 때 네 마음이 불안하고, ‘이것보다 더 좋은 걸 살 수도 있었나’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소용돌이치면 그건 너를 평온에서 멀어지게 하는 선택이야. 그 차를 탄 너의 마음이 자족하고, 흔들리지 않는가가 제일 중요하니까.


네가 지금 고민하는 SUV가 ‘기왕이면’ 수준인지, 아니면 ‘기필코’ 수준인지, 세 번 자문해 보고 결정하자. 그리고 결정했으면—흔들리지 말고 가.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욕망은, 기꺼이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나: 좋은 얘기 고마워, 형. 와이프 전화 온다.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끊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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