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딸의 미래를 대신 꿈꾸는 엄마가 되지 말자.

딸의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지 말자.

주지도, 바라지도 않는 엄마가 되자.


내가 그렇게 다짐한 이유는 바로 내가 그 ‘딸’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더 넓은 세계를 꿈꾸기를, 더 많은 것을 맛보기를, 너의 미래는 평안하기를…." 이런 우리 엄마의 바람이 담긴 산물.


과연 우리 엄마의 투자는 성공한 것일까? 스스로 물었을 때, 나는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갖거나 큰 돈을 벌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 않는다. 내 스스로 내 현재 상태가 최고의 ‘나’라고 느끼지 못하는데, 이게 엄마가 인생을 걸고 꿈꾸던 나의 미래가 맞을까?


일단 철없는 딸들은 고마움을 잘 모른다. 나는 대학시절 소위 집의 ‘기둥 뿌리’를 뽑아 어학연수, 교환학생, 여행 등 해외를 자주 다녔다. 어려서 부터 해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나는 새로운 언어를 내뱉고, 낯선 문화를 익히는데 심취해 있었을 뿐 그 뒤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몇 천 단위의 돈이 들어갔음에도 당시에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 부모님이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 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이, 오히려 가족끼리 크루즈 여행을 다니거나, 학생 신분으로 중고차를 턱턱 사던 풍요로운 친구들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우리 엄마가 나와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나보다 훨씬 멋지게 살았을 것이다. 엄마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고, 계획적이고 꼼꼼하며, 한다면 하는 끈기가 있으니까.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가정주부가 되어야 했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내가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수 있다. 엄마라면 이르렀을 지 모를, 하지만 나는 도달하지 못할 어떤 곳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빚진 기분이 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에는 대물림 되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다. 나보다는 네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나의 모든 좋은 것을 줄테니 너의 미래는 평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대물림 된다. 제주도에서는 여자로 태어나기 보단 차라리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로, 그 시대 여성에게는 노동과 억압, 폭력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었다. 여자로 사는 것은 고단한 일이었고, 똑같은 삶을 살 운명을 타고난 딸들을 향해 엄마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딸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하겠다."


이민 1세대 엄마들과 이민 2세대 딸들 간의 갈등과 이해를 그린 소설 <조이 럭 클럽>에서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백조"를 통해 보여준다.


나이 지긋한 여자는 오래전 상하이에서 터무니없는 돈을 주고 샀던 백조 한 마리를 기억했다. 그때 시장 상인은 떠벌려댔다. 이 새는 원래 오리였는데, 거위가 되고 싶어서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고.

"그 결과 지금은, 보세요. 그냥 잡아 먹어 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워졌잖아요?"


그 뒤 여자와 백조는 수천 리 바다를 건넜다. 미국을 향해 목을 쭉 빼고서. 배 위에서 여자는 백조에게 속삭였다.

"미국에 가면 날 닮은 딸을 낳을 거야. 그곳 사람들은 여자의 위상은 그 남편이 트림을 얼마나 크게 하나 들어보면 안다는 둥 뭐 그 따위 소리는 안 하겠지. 그 애를 낮잡아 보는 사람도 없을 거야. 그 애가 완벽한 미국식 영어만 하게끔 가르칠 거니까. 그곳에서는 늘상 풍족할 테니 슬픔으로 배 채울 일도 없어. 내 딸은 내 뜻을 알 거야. 내가 이 백조를 전해줄 테니까. 스스로 바라던 것보다 훨씬 근사해진 이 새를 말이야."

(『조이 럭 클럽』 中)


그 마음을 받고 자란 딸들은 더 이상 엄마가 살던 시대에 살지 않는다. 여자가 공부해서 어디다 쓰냐는 말을 듣지도 않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당연한 퇴직 사유가 되지 않는 세상에 산다. 여자도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고, 능력이 있으면 남자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런 시대를 사는 딸들이 자신의 딸들을 보며 다짐하는 것은 이런 말이 아닐까?

"우리 딸은 그저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라."


우리는 엄마와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딸들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 모든걸 걸고 딸의 미래를 대신 꿈꾸지는 않는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라는 기대도 없다. 그럼에도, 윤이의 미래가 평안하길 꿈꾼다. 어떤 바람도 담지 않아 가볍게, 그렇게 너만의 길로 훌훌 날아가길.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