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려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애기가 엄마를 빼닮았네!”

이 말이 왜 이렇게 좋을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서 내 모습을 보다니. 괜스레 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칭찬 받는 기분이다.


“완전 아빠 판박이다” 할 때는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저 귀여움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니. 오빠가 저 정도로 귀여웠던가?


부모 자식 간은 어쩔 수 없이 닮는다. 어린이집에만 가봐도 아이 얼굴만 보고 그 부모님을 찾을 수 있는 집이 많다. 마치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겹쳐 보인다. 그런데 부모와 아이가 서로 닮은 것은 외모 뿐은 아니다. 윤이가 말을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윤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 말들이었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 익숙한 말투, 내 손짓까지. 아이는 내가 넣어주는 대로 투명하게 담는 유리병이었다.


그걸 깨달은 이후부터, 아이에게 말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아주 빠르게 체크리스트가 작성된다. 내가 한 말을 아이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했을 때 괜찮은지 계속 점검하는 것이다.


“엄마, 글쎄! 내가 친구랑 부딪쳐서 먼저 미안해 사과했는데, 친구는 사과도 안하고 그냥 간다? 너무 속상해!”


자, 이제 답변 산출의 시간이다. 마음 속 체크 리스트가 빠르게 돌아간다.

부정적 단어는 거른다, 체크!

상냥한 말투로 한다, 체크!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쓴다, 체크!


“친구는 사과를 안 해서 윤이가 속상했구나. 서로 실수로 부딪쳤는데 먼저 사과한 건 정말 멋진 일이야. 다음에는 친구에게 서로 사과하자고 말해보자.”

정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중 가장 곱게 거른 말을 건넨다.


우리는 외모 뿐 아니라 아이에게 세상을 보는 방식,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을 물려준다. 김주환 교수의 <그릿>에서는 부모의 말이나 태도가 아이들의 ‘그릿’, 즉 마음 근력을 어떻게 높이는지 설명한다. 마음 근력이 강한 아이는 실패를 해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 도전을 한다. 도전을 하며 새롭게 배우고, 그 경험이 쌓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아이의 마음 근력은 부모에 의해 키워진다.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는 세상과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지 안내하는 가이드북이 된다. 부모가 진심으로 ‘너는 이겨낼 수 있는 아이야’라고 믿어주는 아이에게는 ‘나는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인식이 생긴다. 반대로 부모의 불안, 짜증, 분노는 아이에게도 전염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만들어주는 세상이 아이의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의 무거움과 무서움은 내 마음에 돌처럼 박혔다.


윤이가 태어나서 집으로 데리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서툰 손으로 윤이를 간신히 재운 뒤 나는 침대에 누워 윤이가 들어온 이후의 내 삶을 글로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내가 지었던 책의 제목은 ‘내 모든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였다. 내가 가진 것을 곱게 달여서 그 중 제일 맑고 귀한 것만 윤이에게 주겠다는 나만의 다짐이었다.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그 다짐은 곧 ‘내 모든 좋은 것을 너에게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문으로 변했지만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 속에서 내 삶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윤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말도 안되는 떼를 쓰는 윤이를 보며 짜증이 치밀어 올라 기어코 윤이 눈이 퉁퉁 붓도록 울게 내버려둘 때도 있었다. 내 안의 좋은 것만 걸러서 아이에게 주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매일 던진 말들이 쌓여 윤이의 세상이 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윤이의 투명한 유리병에는 맑고 고운 말들만 채워주고 싶어서 오늘도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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