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를 바꿨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책은 내게 친구처럼, 때로는 멘토처럼 다가왔다.
시크릿을 처음 읽은 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요동쳤다.
변화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고,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책 속 이야기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내가 배운 긍정의 언어들은 실생활에서는 너무 무력했고,
그 거대한 벽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작고 흔들리는 존재였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경력이라고는 두 군데의 콜센터.
그마저도 모두 도망치듯 퇴사한 이력.
‘경리라도 해볼까?’ — 하지만 엑셀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과연 가능할까.
‘마트라도?’ — 머릿속은 수없이 복잡했다.
젊은 내가 왜 벌써부터 삶을 타협해야 하는 걸까.
긍정적인 생각을 붙잡으려 해도, 자존감은 밑바닥을 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콜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내심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수없이 되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 이 길이 내 길이라면 받아들이자.
단, 이번엔 예전처럼 약해 빠진 마음으로 하지 말자.
진짜 제대로 해보자.”
그렇게 나는 세 번째 콜센터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번엔 인바운드(전화를 받는 일)가 아닌 아웃바운드,
즉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업무였다.
주로 보험 재가입을 유도하는 콜이었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환경.
나는 다시, 신입이었다.
그 무렵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 심리학,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집.
열정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늘 내 옆에 있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번에는 절대 도망치지 말자.
그런데…
이틀. 삼일.
현실은 또다시 무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나는 회사가 시키는 일만 딱 그만큼 해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월급만큼만 일하는 직원.”
어느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튀지 말자. 평균만 하자.”
눈에 띄지도,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 그저 그런 직원.
우리 회사는 실적에 따라 급여가 차등 지급되는 구조였다.
성과만큼 받는다는 건 어찌 보면 공정한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한 만큼 더 급여를 더 보장받는다. 누군가는 이 시스템을 기회라 여겼고,
실제로 빛나는 성과를 내며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내게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왔다.
성과가 없는 날이면, 내 존재마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일이 버거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힘들었다.
매일 아침이면 회사에서는 ‘데일리 실적표’가 도착한다.
이름, 콜 수, 실적률, 목표 대비 수치들이 칼같이 정리된 표.
누가 잘하고 있는지, 누가 뒤처지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그리고 나는, 늘 표의 아래쪽에서 내 이름을 찾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내 눈은 본능적으로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크게 기대도 하지 않는다
어떤 점이 부족한지 분석하거나
개선점을 고민하지도 않았다
기대도 없고, 충격도 없었다.
동기들, 그리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들마저
내 위에 이름을 올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놀랍지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괜찮아?”라는 말이 더 불편했다.
그 말속에 담긴 동정, 위로, 혹은 은근한 비교…
어떤 감정이건, 그 모든 게 싫었다.
나는 점점 더 조용히, 묻히는 법을 배웠다.
불만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가 마치 내 몫인 것처럼, 나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바닥에 익숙해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열심히 해봐. 기회는 있어.”
하지만 나는 이미 나 스스로를 작게 규정해 버린 상태였다.
“나는 그냥 이 정도 사람이니까.”
실적에 휘둘리는 회사에서
나는 실적을 내려다보는 대신, 실적에 눌린 채 살아갔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자기 개발서를 읽고, 그 안에 담긴 말들을 내 삶에 적용해 보려 애썼지만.
결국, 현실 앞에서 나는 다시 예전의 무기력한 나로 돌아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책을 읽었을까? 아니, 나는 책을 읽는 행위를 했을 뿐,
그 안의 메시지를 내 삶에 깊이 녹여내려는 진심은 있었던 걸까?’
나는 그 책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변화를 바란다는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