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01-#오운완 #성공 #영앤리치

by 다소


"자, 회원님. 고개 왼쪽으로 살짝만 더. 그렇죠. 턱은 아래로 당기고… 좋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강렬한 조명이 터질 때마다 김민준은 반사적으로 복근에 힘을 주었다. 지난 석 달간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삼키며 만들어낸, 그의 인생에 다시없을지도 모를 육체였다. 이곳은 헬스장이 아니었다. 강남의 한 바디 프로필 스튜디오, 'A컷'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이었다. 그가 이 한 시간을 위해 쓴 돈은 그의 월급 절반에 해당했다.


"자, 이번엔 덤벨 들고 어깨 힘 빡 주고 가실게요!"


포토그래퍼의 주문에 민준은 소품용 덤벨을 들어 올렸다.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쾌적한 스튜디오 안, 스태프가 분무기로 그의 몸에 정성껏 '땀방울'을 뿌려주었다.

그가 입은 로고 선명한 명품 트레이닝복은 스튜디오에서 추가 비용을 내고 대여한 의상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그는 탈의실에서 대여한 옷을 벗어 곱게 반납했다.

다시 그의 몸에 걸쳐진 것은 목이 늘어난 낡은 티셔츠와 무릎 나온 추리닝이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포토그래퍼와 함께 사진을 골랐다.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우며, 성공한 남자의 모습.


"이걸로 할게요."


그가 고른 것은 가장 교묘하게 스튜디오의 흔적이 지워지고, 마치 최고급 피트니스센터 개인 라커룸처럼 보이는 배경의 사진이었다. 보정 옵션은 'SNS 최적화형 : 과하지 않은 근육 및 피부톤 보정' 을 선택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할부 3개월’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찍힌 영수증을 받아드는 순간, 현실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스튜디오를 나와 도착한 지하철 2호선은 퇴근길 인파로 가득했다. 민준은 사람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옴짝달싹 못 한 채, 방금 받은 사진 파일을 열었다. 차갑고 딱딱한 스마트폰 액정 속에서, 완벽하게 조각된 남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주변 시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인스타그램 앱을 열고, 사진을 업로드했다.

필터는 'Ludwig'. 채도를 살짝 높여 건강미를 극대화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공들여 문구를 입력했다.


#오운완 #성공 #습관 #영앤리치 #자기관리


‘성공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새벽의 고독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필연의 결과물이다.’

이 문장을 찾기 위해 그는 성공한 사업가들의 명언집을 밤새 뒤졌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자, 그의 초라한 현실 위로 가상의 세계가 덧씌워졌다. 지하철의 소음, 사람들의 땀 냄새, 퀴퀴한 공기. 그 모든 것이 잠시 멀어지는 듯했다.

환승역에서 인파에 떠밀려 내린 그는 익숙하게 그의 현실인 반지하 동네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좋아요’ 317개. 댓글 32개.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민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103호’.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그를 덮쳤다.

원룸은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러웠다. 편의점 도시락 용기, 며칠째 방치된 배달 음식 그릇들이 그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 노트북 화면에는 해외 유료 투자 리포트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그의 두 번째 모습, ‘Next Buffett’ 이라는 투자 전문가의 지성을 유지하기 위해 바디 프로필만큼이나 큰돈을 쏟아붓는 원천이었다.

평소처럼 컵라면에 물을 붓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업로드한 그의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을 다시 훑었다.


‘형님, 오늘도 리스펙합니다!’

‘역시 성공한 남자는 자기관리부터 다르네요. 본받고 갑니다.’

그때, ‘sohee_han’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민준 씨, 역시 멋져요. 주말에 만나요 ♡’


하트 이모티콘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주말 데이트.

그는 텅 빈 냉장고와 바닥을 드러낸 통장 잔고, 그리고 다음 달 카드값 명세서를 떠올렸다. 할부 3개월. 아찔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멈출 수 없었다. 이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절대 들키지 말 것.

그는 영앤리치가 된 자신을 상상하며 자판을 두드렸다.


‘소희 씨를 위해서라면. 제가 요즘 눈여겨보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예약해 둘게요.’


답장을 보내고, 그는 뜨거운 줄도 모르고 컵라면 면발을 입에 밀어 넣었다. 입천장이 데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스마트폰 액정 너머, 완벽하게 연출된 자신의 페르소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거짓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