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02-떡볶이와 롤렉스

by 다소


토요일 오후, 세상의 모든 분식 냄새가 이곳에 모여있는 듯했다.


민준은 앞치마를 두른 채, 거대한 철판 앞에서 쉴 새 없이 떡볶이 판을 젓고 있었다. 매캐한 고추장 양념과 뜨거운 김이 연신 얼굴로 훅훅 끼쳐왔다. 등 뒤에서는 어머니가 쉴 새 없이 튀김을 건져 올리는 소리가, 카운터에서는 아버지가 포장 주문을 받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주말마다 반복되는 그의 진짜 현실이었다.

SNS 피드 속, 한가롭게 브런치를 즐기거나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그의 가짜 모습. ‘Next Buffett’과는 아득히 먼 풍경.


“어서 오세요!”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에 민준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였던 정현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현의 옆에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정현은 민준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 김민준 맞지?”


정현의 목소리에 가게 안의 모든 시선이 민준에게로 향했다. 민준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현아. 여긴 어쩐 일로…”

“나 이 근처 살아. 와이프랑 장 보러 나왔다가. 너 여기서 일하는 거야?”

정현의 질문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민준에게는 칼날처럼 날아와 박혔다. ‘일하는 거야?’라는 말은 ‘네가 왜 이런 허름한 곳에?’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차마 부모님 가게라고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아, 그냥… 주말에 잠깐 돕는 거야.”

“그래? 고생이 많네.”

정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떡볶이 1인분과 튀김을 주문했다. 민준이 떡볶이를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내미는 순간, 그의 시선은 정현의 손목에 꽂혔다. 청판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눈부신 광채가 민준의 동공을 찔렀다. 대학 시절, 과에서 가장 먼저 대기업에 입사했다며 자랑하던 놈이었다. 불과 몇 년 만에 그와 자신 사이의 거리는 저 시계의 가격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벌어져 있었다.


“자기야, 나 여기 냄새 때문에 머리 아파. 그냥 포장해 가면 안 돼?”

정현의 아내가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그 말은 민준의 가슴에 두 번째 비수가 되었다. 정현은 멋쩍게 웃으며 포장을 요청했고, 민준의 아버지가 묵묵히 검은 비닐봉지에 음식을 담았다. 계산을 마친 정현은 민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고생해라. 다음에 연락 한번 할게.”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의 빈말이었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가게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민준은 다시 떡볶이 판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눈앞에 롤렉스의 청판이 아른거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튀김 기름 냄새, 고추장 냄새, 평생을 맡아온 이 지긋지긋한 냄새가 자신의 온몸에 각인된 낙인처럼 느껴졌다.


지친 하루였지만 그날 밤, 민준은 잠들지 못했다. 천장에 어린 도로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보며 그는 오래 전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가게 마감을 도울 때, 술에 취한 중년 남자가 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떡볶이 맛이 없다는 시비로 시작된 고성은 욕설로 번졌고, 급기야 남자는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어린 민준은 구석에 서서 부들부들 떨며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나 경찰이 오고 상황이 정리된 후,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묵묵히 가게 바닥을 닦았다. 그날 밤, 민준은 아버지의 무력한 등 뒤에서 돈이 없다는 것, 힘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롤렉스를 찬 정현 앞에서 느꼈던 감정은 바로 그날의 무력감과 똑같은 것이었다.


‘노력하면 된다고? 정직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아버지가 평생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를 맴돌았다. 아버지는 평생을 성실하게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들의 눈에 비친 무력한 모습과 기름때 낀 앞치마뿐이었다.

민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열고, 검색창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은 잠시 망설이다, 글자를 입력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롤렉스서브마리너

#영앤리치

#성공


스크롤을 내리자 눈이 멀어버릴 듯한 세상이 펼쳐졌다. 슈퍼카 핸들 위에 보란 듯이 올려진 시계들, 최고급 호텔 라운지에서의 와인 파티, 개인 요트 위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세상에는 기름 냄새나 눅눅한 지하의 공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반짝였고, 가벼웠고, 또 견고해 보였다. 그들은 결코 누구에게도 멱살을 잡히거나, 무시당하지 않을 터였다.

민준은 숨 막히는 질투와 경외감 속에서 화면을 넘겼다. 이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저런 삶을 사는가. 스크롤을 내리던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유독 많은 사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해시태그가 있었다.


#투자

#주식

#벤처캐피탈

#VC


그가 희미하게 알고 있던 세계였다. 젊고, 똑똑하며, 막대한 돈을 굴리는 사람들.

그는 생각했다. 이 세계라면, 이 가면이라면, 지긋지긋한 김민준의 현실을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결핍은 단순히 통장 잔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 깊숙이 각인된 수치심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수치심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다.


민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스마트폰 액정 위로 반짝이는 수많은 성공의 아이콘들을 응시하며, 그는 자신의 완벽한 ‘페르소나’를 빚어낼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욕망을 투영할 단 하나의 완벽한 모델뿐이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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