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03-청담동의 유령

by 다소


그날, 박성철 팀장은 기분이 유달리 좋았다.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이라며, 그는 팀원 전원을 청담동의 최고급 레스토랑 ‘메종 드 라 뤼미에르’로 이끌었다.

하지만 박성철 팀장과 같은 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민준은 초대받은 팀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옷장에는 이곳의 격에 맞는 옷이 단 한 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면접 때 입었던, 몸에 제대로 맞지도 않고 광택만 번들거리는 싸구려 정장을 꺼내 입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레스토랑 앞에 섰을 때, 민준은 이미 다른 세계에 도착한 이방인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건물을 감싸고 있었고, 입구에서는 검은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고급 외제차들을 능숙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한 탓에, 어디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 근처에서 서성였다.

바로 그 어색한 서성임이 문제였다.


"저기요."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와 함께 다가온 여자가 그에게 당연하다는 듯 스마트키를 던졌다.


"파나메라, 흰색. 지하 3층에 부탁해요."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날아온 키를 받아 들었다. 여자는 그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이 레스토랑 안으로 사라졌다. 그의 번들거리는 정장, 어색한 몸짓, 그리고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가난의 기운이 그를 완벽한 주차 요원으로 만든 것이다.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그가 멍하니 키를 손에 쥔 채 굳어 있을 때, 뒤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민준 씨, 거기서 뭐 해? 사람 기다려?"

박 팀장이었다. 그는 민준의 손에 들린 포르쉐 키와 그의 얼빠진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민준 씨, 여기서 알바 뛰는 줄 알았네! 키 이리 줘, 내가 전해주고 올게. 얼른 들어가자고!"

박 팀장의 선의는 민준에게 더 큰 굴욕감을 안겼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팀장을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샹들리에의 눈부신 빛, 나직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 식기 부딪히는 소리마저 고급스러운 그 공간에서 그는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화는 온통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누구네 집 아이가 국제중학교에 입학했다더라, 이번에 새로 산 세컨드 카의 제로백이 어떻다더라, 주말엔 가평 별장에서 뭘 했다더라. 민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익숙한 웃음소리가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돌린 곳에, 그의 전 여자친구 유나가 있었다. 2년 전, "민준아, 넌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더 행복하고 싶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그녀였다.

그리고 유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 남자의 팔짱을 꼭 낀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유나 옆의 멋진 남자는 민준이 인스타그램에서 수없이 봐왔던 성공의 아이콘들과 정확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포마드 헤어, 몸에 완벽하게 맞춰진 비스포크 수트, 그리고 손목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파텍 필립 시계까지. 그가 뿜어내는 여유와 자신감은 주변의 공기마저 바꾸는 듯했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찰나의 순간, 경악으로 커졌다. 마치 길에서 바퀴벌레라도 마주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는 남자를 향해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그를 완벽하게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유령 취급했다.


얼어버린 민준 옆에 앉아있던 박 팀장이 옆에서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


"민준 씨, 저 남자 누군지 알아? 요즘 제일 잘나가는 투자회사, '퀀텀 리프'의 다니엘 정 대표야. 월스트리트 출신에, 집안도 빵빵하고. 저런 게 진짜 '영앤리치'지. 옆에 여자는 아나운서 준비생이라던데, 완전 그림이네."


다니엘 정. 그 이름이 민준의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유나는 다니엘 정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고, 다니엘은 잠시 이쪽을 쳐다봤지만, 민준에게는 단 1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민준을 통과해, 그 뒤의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듯했다. 완벽한 무시. 존재의 완전한 소멸.


그 순간부터 민준은 아무것도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는 지우개를 씹는 것 같았고, 비싼 와인은 쓴 물약처럼 느껴졌다. 그는 웃고 떠드는 팀원들 사이에서 완벽한 유령이 되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곰팡내 나는 반지하 원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청담동의 화려한 불빛과 이곳의 처참한 현실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그를 비웃었다.


그는 황급히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다니엘 정.'을 검색했다.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가 쏟아져 나왔다. 민준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모든 것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시는 와인, 그가 입는 옷 브랜드, 그가 쓰는 말투, 그가 사진을 찍는 구도, 그가 즐겨 쓰는 해시태그까지. 마치 신의 경전을 읽는 사도처럼, 혹은 적의 비밀문서를 해독하는 스파이처럼.

화면 속 다니엘 정은 완벽했다. 그는 민준이 꿈꾸던 모든 것이었고, 어쩌면 그와 미래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유나를 민준에게서 빼앗아간 존재였다. 물론 언젠간 민준을 떠나갔겠지만.


새벽이 밝아올 무렵, 민준은 마침내 노트북을 덮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노력이나 성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체'였다.


김민준은 오늘 밤, 청담동에서 유령처럼 소멸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Next Buffett’이 그의 껍데기를 쓰고 태어날 것이다. 다니엘 정보다 더 완벽한, 성공한 남자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로.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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