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13-거짓의 요새

by 다소


민준은 악몽을 꾸었다. 끝없이 아래로 스크롤되는 엑셀 시트였다.

수천, 수만 개의 붉은 셀들이 살아 움직이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수익금', '지급일', '원금'. 셀들이 그의 몸 위로 쏟아져내려 그를 질식시키는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으아아악!!!"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최고급 구스다운 이불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강남의 최고급 오피스텔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땀에 완전히 젖은 그가 밖을 바라보니 창밖으로 이제 막 밝아오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하지만 그 풍경은 더 이상 성공의 상징이 아니라, 그가 갇혀버린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는 샤워를 하고, 수백만 원짜리 수트를 입고, 새로 산 최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렸다. 잡지에서 본 성공한 CEO의 아침 루틴을 그대로 따라 하는, 영혼 없는 의식이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성공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의 거짓된 요새, '페르소나 캐피탈'은 이제 제법 회사다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명문대 출신이 아닌, 순진한 열정으로 가득 찬 20대 대졸자 두 명을 직원으로 뽑았다. 그의 거짓말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의 성공 신화를 숭배해 줄 신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 두 직원 앞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CEO를 연기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우리의 미션은 어제보다 더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K-콘텐츠의 미래라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구자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그의 연설에 두 젊은 직원은 민준을 바라보며 감격한 눈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며칠 뒤, 사무실 한쪽 벽에 통유리로 된 서버실이 설치되었다. 민준이 투자금 수천만 원을 들여 구축한, 그의 사기극을 위한 가장 거대하고 비싼 소품이었다. 인테리어 업자와의 미팅에서 그는 아는 척을 해야만 했다.


"랙은 항온 항습 기능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보안을 위해 생체 인식 시스템도 추가해주십시오. 저희 알고리즘의 코어 데이터를 보관할 곳이니까요."


업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서버가 실제로는 텅 빈 깡통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푸른빛을 내며 깜빡이는 수십 개의 LED 램프와 복잡하게 얽힌 케이블들은 무언가 대단한 연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것이 바로 '시냅스 알고리즘'의 심장입니다."

민준의 설명에 직원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유리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요새가 겉보기에 점점 더 견고해질수록, 그의 내면은 빠르게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날 오후,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인터폰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동이 묻어 있었다.


"대표님, '아빠는강하다'라는 투자자 분께서 거의 매일 전화를 주셨어요. 대표님 덕분에 아이가 새 생명을 얻었다면서,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정말 간절하세요."

민준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수화기를 드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중년 남성의 흐느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흑…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딸 아이, 이렇게 좋은 병원에서 수술받는 건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다고… 대표님 덕분에… 우리 딸이 살았습니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대표님은 제 가족의 은인이고, 구원자이십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위선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다.

"천만에요, 아버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따님의 건강이 최우선이죠. 부디 쾌유를 빕니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평온한 목소리를 연기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사무실 안쪽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는 변기를 붙잡고 거칠게 헛구역질을 했다. 그의 엑셀 시트 위에서 차갑게 굴러다니던 숫자들이, 한 아이의 생명과 한 가족의 눈물이라는 끔찍한 무게로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는 그날 오후의 모든 미팅을 취소하고, 사무실에서 홀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가 알코올의 힘을 빌려 간신히 평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을 때,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김 비서의, 이번에는 흥분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대표님, 좋은 소식입니다! '한국경제일보'의 최기환 기자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지난번 '테크 인사이트' 기사를 아주 인상 깊게 보셨다면서, 저희 '시냅스 알고리즘'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특히… 잠시만요, 제가 정확히 받아 적었는데… '알고리즘의 기술적 구현 방식과 학습에 사용된 백데이터의 구체적인 스펙'에 대해 묻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민준의 뇌 속 모든 회로가 정지했다. '한국경제일보'.

이전에 풋내기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테크 인사이트' 같은 군소 매체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금융계와 산업계를 움직이는, 가장 날카롭고 집요한 진짜 언론이었다.

'최기환'. 그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가 동경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했던 '진짜들'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기술적 구현 방식', '백데이터 스펙'. 그것은 그의 아킬레스건을 정면으로 겨누는 칼날이었다. 이것은 찬사를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 검증을 위한 청문회가 될 터였다.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떡볶이집의 기름 냄새, 청담동의 굴욕, 백 사장의 탐욕스러운 얼굴, 그리고 방금 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한 아버지의 울음소리까지.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지가 던진 인터뷰 제안을 거절하는 신생 대표는 없다. 거절은 그 자체로 의심의 빌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수락할 수도 없었다. 그의 거짓말은 순진한 기자를 상대로는 통했지만, 진짜 포식자 앞에서는 단 한 입에 물어뜯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최고급 책상, 강남의 전경... 그가 쌓아 올린 거짓의 요새는 더없이 견고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깨달았다. 이 요새의 모든 벽은, 사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포식자는 성문 밖에서, 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김 비서가 재차 물었다.

"대표님? 어떻게 답변 드릴까요?"


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입은 바싹 마르고, 등줄기로는 그 어느때보다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요새는 이제, 가장 완벽한 형태의 감옥이 되었다.


[1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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