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길
기나긴 항암치료가 끝났다.
그 사실이 내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직 남은 치료과정들을 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 세상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수술 전에 계획되었던 항암이 전부 끝났을 때,
창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12회 차의 바늘이 몸에서 뽑히는 순간에는 해방감을 느꼈다.
제일 괴로운 과정이 끝났다는 기쁨과, 여기까지 버텨낸 나 자신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물론 그 후에 해야 할 치료 과정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수술은 바로 진행되지 않았다. 내 몸은 그걸 견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무너져 내린 몸 안은 조금 걷는 일로도 숨이 찼고, 잠시 서있는 것도 갓 태어난 짐승처럼 위태로웠다. 혈관이 얇아진 탓인지 정상 범주였던 혈압은 많이 낮아져서, 말 그대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이었다. 살기 위해 받은 치료였지만 살기 위한 힘이 없었다.
내 몸에 못 박힌 불온한 세포 덩어리를 완전히 뽑아내기 위해서 다시 살아낼 힘부터 만들어야 했다. 기운을 회복하고, 몸에 다시 힘을 붙였다.
다행인 건, 내가 어리고 젊다는 점이었다. 항암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체력이 금방 회복되었다.
수술을 앞두고는 생각보다 많은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내 몸이 버틸 수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심장 기능, 혈액 검사, 초음파까지.
특히 폐기능 검사가 제일 힘들었다. 의자에 앉아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참은 뒤, 특정한 신호에 맞춰 호흡을 내뱉는 일이 꽤 버거웠다. 여러 번의 실패 후, 마지막 시도에 겨우 성공했다.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폐기능과 심장 기능이 조금 위태롭긴 했지만 어쨌든 통과였다. 암세포의 크기도 꽤 많이 줄었다고 했다.
대신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특이 케이스로 가슴에서 임파선까지 바로 전이된 상태였다. 그 탓에 수술에서 오른쪽 팔의 림프선을 전부 떼어낼지 말지를 두고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오히려 나보다 의사 선생님의 고민이 더 깊었다. 아마도 많은 환자들을 통해 그 불편함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하필이면 오른손잡이였다. 거기에 손을 써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림프를 전부 절제해 버리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었고, 그대로 두기엔 혹시 모를 재발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아는 게 없는 나는 고를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고민했고, 자료를 모았고, 다른 의사들의 의견도 들었다. 그 결정이 단순한 수술 계획이 아닌, 내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걸.
그 책임의 무게를 나 대신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