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내 삶의 시간은 멈춰있었지만
세상의 계절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다가왔고,
수술 전 예정됐던 항암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문득 거울 앞에 선 나는 처음과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미각은 이미 무너졌고, 스트레스로 불었던 살도 전부 빠져 앙상한 모습이 되었다. 그럼에도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먹으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먹는 행위는 고역이었지만, 그만큼 변기 앞에 엎드려 있는 횟수가 줄어드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공복 상태가 더 위험했다. 속이 비면 금세 울렁거렸고, 위액을 토해내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오히려 두세 시간마다 조금씩이라도 먹고 배를 채우면 속이 한결 편했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지냈다.
초반엔 콘솔 게임으로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도 TV도, SNS도 더는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허공만 바라봤다. 뭐라도 하려는 시도조차 사라졌고, 그렇게 무력하게 지나가는 시간 위에 내 하루가 깔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흐르는 건지, 멈춰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는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그다음 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간간이 친구들과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부를 묻는 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건 그들의 새로운 소식이었다.
누군가는 이직을 했고,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어디선가 친인척의 부고가 들려왔고, 그 사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흘러들어왔다.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빠르고 활기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잘 버티고 있는 척, 밝은 말투로 답장을 보낸 뒤 다시 이불을 덮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워서 그 시간들을 우울해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빠진 자리도 금세 채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로,
그렇게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