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났다.
적어도 치료 계획표에서 가장 커다란 한 줄을 지워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건 분명히 '끝'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내게 안도감을 주진 않았다.
하나의 과정이 정리된 자리엔 또 다른 불안이 자리를 틀었고,
나는 여전히 낯선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아무런 방향도 없었다.
수술 당일이 되었다.
오전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지막 혈압 검사도 하고, 이것저것 확인도 했다. 나는 괜히 긴장되어서 밤 잠을 설쳤음에도 정신이 또렸했다.
보통은 '수술이 잘못되면 어쩌지'같은 걱정을 하려나?
하지만 내 고민은 좀 달랐다. 수면 마취가 깬 후에 이상한 말을 지껄일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면 마취 후 웃긴 썰' 중 하나가 되지는 않을까. 만일 내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나는 어떤 최악의 쪽팔린 말을 내뱉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내 표정이 꽤 불안해 보였는지, 엄마는 수술이 잘 끝날 거라며 위로해 주었다. 나는 수술 후에도 의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따위의 걱정을 하고 있던 터라 조금 무안했다.
시간이 되었다.
수술실에 갈 때는 휠체어를 타고 갔다. 간호 보조를 해주는 분이 내 휠체어를 끌고, 엄마는 옆에서 따라 걸어왔다. 수술실 앞에 도착했을 때,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 말을 들었다.
“보호자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익숙한 대사인데, 이번엔 현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뒤에 남겨진 엄마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당시의 나는 미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설렘이 앞서있었고, 그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항암 끝난 지 고작 한 달 지났다고 삐죽삐죽 올라오는 머리카락을 비닐캡으로 감쌌다. 안에 구비되어 있는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안내를 받아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까지는 하얀 형광등이 천장을 따라 이어져 있어서 그나마 따뜻한 느낌이 났다. 그러나 수술실 안은 어둡고, 온통 금속 천지여서 차가운 느낌이 훅 끼쳐왔다. 단지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차가운 공기가 서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수술대 위로 올라가 상의부터 벗었다. 여자분들이 나의 수술 준비를 도와주었고, 남자분들은 최대한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 느껴졌다. 이미 그때의 나는 내 몸이 그저 아픈 고깃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치료 과정에서 누군가 앞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건 좋은 기분을 남겼다.
내 몸 위로 여러 겹의 천이 덮였다. 그리고, 대망의 거꾸로 숫자를 세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안 될 걸 알면서도, 끝까지 세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10, 9,
8,
7....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술실 밖, 하얀 천장이 보였다.
시야는 흐릿하고 정신은 몽롱했다. 당시엔 마취의 여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시야가 흐린 건 단순히 안경을 끼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몸 아래엔 익숙지 않은 감각이 있었다. 누웠던 침대는 바뀌어있었고, 가슴엔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두껍게 붕대가 감겨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점차 정신이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하나씩 떠올랐다.
'드디어 수술이 끝났구나...'
'결국 숫자는 끝까지 못 센 것 같아.'
'그냥 누워있으면 되나?'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 기운도 없었지만, 여러 차례 입원하면서 낙상 예방에 대한 걸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던 덕분이었다.
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 보니, 내 옆으로 또 다른 침대가 밀려왔다. 수술을 막 끝낸 듯한 환자였다.
그제야 내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분이 나머지 정리를 마친 뒤, 다른 간호사들을 불러 침대 이동 준비를 해주었다.
올 때는 휠체어를 탔고, 갈 때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다른 환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모습을 보아하니 정형외과에 들른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선은 무거운 동정이나 염려 같은 건 없었다. 그보단 신기하다는 듯, 낯선 장면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수술 직후의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경험이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뭘 꼬라봐.'라고 해준 채,
멍하니 병실로 옮겨졌다.
그곳엔 걱정스럽게 날 기다리는 엄마가—
... 아니라, 보호자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