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났다.
엄마가 멋쩍게 일어났다.
퉁명스러운 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고 불평하자, 엄마는 당황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 한 시간은 기다렸지. 근데 간호사가 와서 몇 시간 더 걸릴 거라길래, 병실로 가 있으랬어."
그 말에 나는 바로 납득했다. 5시간이나 앉아있는 건 비효율적인 짓이니까.
힘 좋은 간호사 분들이 내가 누운 침대를 들어서 환자 침대에 올려주곤 떠났다.
한 분만이 남아 주의사항을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아무래도 내 상태 때문에, 나보다는 보호자인 엄마를 주 대상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눈만 깜빡이며 듣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제일 청천벽력 같은 말이 있었다.
"몇 시간은 물을 드시면 안 됩니다."
내 목은 이미 타들어갈 듯했다. 입 안이 마르고 혀가 들러붙었다. 그런데 물을 마시면 안 된다니... 다행히 입을 헹구는 건 허락되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다.
어쩐지 수술날의 1인 실엔 방 안에 세면대도 딸려있어서 신기해했었는데, 이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곧 간호사가 와서 원통형의 케이스에 담긴 진통제를 가져왔다. 낯설게 생긴 투명한 통이었다. 간호사는 그것을 링거줄에 연결하며 말했다.
"진통제니까, 너무 아프시면 버튼 눌러주세요."
간호사는 친절하게 버튼이 무엇인지, 어디에 달려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일정량의 진통제가 주입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접했던 진통제는 엄마의 치질 수술 직후였다. 그보단 조금 더 첨단 시스템인 것 같았다.
진통제가 어느 정도로 강한 건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버튼을 누르는 일은 없었다.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고통에 강한 편이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사실은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부리지만, 진짜로 못 참을 정도로 아픈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내 주의를 끈 건 통증보다 더 즉각적이고 선명한 충격이었다. 시간이 지나 안정을 어느 정도 찾았을 무렵, 화장실에 간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소변이 파란색이었다. 진짜로, 변기에 넣는 파란 소독제 같은 선명한 색이어서, 처음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어라, 변기 물이 원래 파랗던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병실 변기에 그런 사치스러운 기능이 있을 리 없었다. 변기 물을 내리자 익숙한 투명한 빛의 물로 대체되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상한 건 변기 물이 아니라 나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은 분주했다.
'헐, 이거 수술 마취약 때문인가?'
'혹시 내 혈관도 피가 아니라 마취제로 대체되었던 거면!?'
'헐, 신기해!!'
나는 당장 문 밖으로 나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오줌이 새파래!"
엄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고서 다시 게임을 했다. 아무리 봐도 날 핑계 대고 쉬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당황한 건 나 혼자였다.
엄마는 내가 외계 생물이라도 된 것처럼 놀라 주지 않았고, 파란 소변도 게임의 난이도를 방해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꿈을 꿨다.
꿈을 꿨다. 아쉽게도 초반 내용은 흐릿하다.
하지만, 깨어나기 직전의 장면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병원 복도를 누군가가 쫓아왔다. 그 남자는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분명히 내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나는 미친듯이 도망쳤고, 지금의 내 병실로 뛰어왔다.
그곳엔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흘러들고 있었고, 엄마는 평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를 쫓아오지 않았고, 창밖의 나뭇잎은 바람에 살짝 흔들릴 뿐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조용히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침대 아래에서 뻗어나온 손이 내 몸을 붙잡고, 쫓아오던 남자가 위에서 튀어나와 베개로 날 짖누르려고 했다. 나는 벗어나려 이리저리 발버둥 쳤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어이없게도 그러고 바로 깼다.
병실 안은 어둑했고, 나는 얌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눈꺼풀은 떴지만, 몸은 그대로였다. 목은 말랐고,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아, 이게 가위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병실에서 가위를 눌리면 무서울 법도 했다. 그런데 처음 눌려본 가위였음에도 이상하게 나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고... 그보단 짜증이 더 컸다.
그 상태에서 손가락을 움직여보려고 애썼다. 생각보다 금방 풀려버렸다.
허탈했다.
'에이, 이런 거면 어디가서 가위 눌렸다고 말도 못하겠네.'
긴장도, 공포도 이기는 건 결국 잠이었다. 피로함이 그대로 나를 덮쳤고, 다시 잠들었다.
그 뒤로는 숙면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