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끝났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기 전까지도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았다.
5년 동안 복용해야 할 약을 처방받는 순간, 수술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이 먼저 와닿았다.
가슴속의 큰 암덩어리는 잘라냈지만, 임파선으로 번진 것들은 결국 방사선 치료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치료는 매일 병원에 출석해야 했기에, 서울이 아닌 원래 살던 집이 있는 곳에서 받기로 했다.
3주마다 서울에 올라오던 일정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허전했다.
새로운 곳에서 내 몸 상태를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검사 결과가 담긴 CD와 상태를 기록한 각종 서류를 발급받아 전달하는 일뿐이었지만, 그 과정의 대기 시간은 하나하나가 길고 지루했다.
방사선 치료실 앞 대기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차 있었다. 죄다 나보다 훨씬 나이 든 사람들뿐이었고, 내 또래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시선을 견디는 데는 익숙했으니까.
첫날에는 내 몸 위에 선이 그어졌다. 치료 기계가 위치를 잡기 위한 가이드선이었는데, 지워지면 안 되니 샤워도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했다. 겨울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달 동안,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 도착해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차례가 되면 기계에 누웠다.
서늘한 치료실 안은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천장에는 풍경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기계 소리에 묻히긴 했지만,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은은하게 들렸던 것 같다. 모든 것이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장치였다.
덕분에 움직이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몇 번이나 들어서 괜히 긴장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초반에는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였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되니 '이 정도면 할 만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치료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게 나타난 부작용은 단 하나,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식욕이 사라질 만큼 심하진 않았지만, 묘하게 하루 종일 속이 출렁이는 듯한 감각이 따라다녔다. 위가 아픈 것보다는 멀미에 더 가까웠다. 흉부에 압박이 가해지는 듯한 둔탁한 매스꺼움이, 하루 종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약을 타게 됐다.
그것은 흔한 소화제나 진통제가 아니라, 방사선 치료 부작용에만 쓰이는 전용 약이었다.
전용 약이 있다는 게 꽤 신기했다.
방사선 치료는 아프지 않았다. 그저 반복되는 루틴과, 방사선 피폭(?)으로 세포들이 하나씩 쓰러져 가는 피로가 나를 지치게 했다.
한 달이 지나 치료가 끝났을 무렵, 기쁨을 느낄 여력조차 내게는 없었다.
그저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