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끝이 아니라 다음

아직도 뭐가 남았다고요?

by Vainox



방사선치료 마지막 날, 나는 드디어 큰 치료과정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완치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집에서 요양하며 매시간마다 꼬박꼬박 약을 잘 챙겨 먹고, 추적관찰만 잘 받으러 다니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 내 몸의 병은 소강상태에도 들어서지 못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른팔이 아팠다.

처음엔 수술 후유증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팔을 움직이지 않으면 통증은 가라앉았다. 움직이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내 몸의 이변을 알아챈 건 내가 아닌, 가족들이었다.


"너 팔 조금 부은 것 같다?"


"그래?"


엄마의 말에 의문 투성이의 말로 대답한 나는 양팔을 들어보았다. 역시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뒤, 여동생도 같은 말을 했다.


팔의 부기가 가라앉질 않으니, 분명 이상이 생긴 건 분명했다. 마침 서울 병원에 가서 진료볼 날이 가까워져서, 그때 의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며칠 사이 내 팔은 점점 더 부어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팔을 내밀었다. 의사는 곧장 눈길을 주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일단, 재활의학과 진료를 바로 잡아드릴게요. 들렀다 가보세요."


그때까지도 나는 내 팔에 무슨 이변이 일어난 건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부정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게, 림프 부종이 생길까 봐 수술하기 전에 그렇게 고민했었던 일이 무색해지는 것이 싫었다.


재활의학과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내 팔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곧바로 말했다.


"림프부종입니다. 당장 치료 해야 할 것 같아요."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동안 불안함 속에서 도피만 하던 내가 바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미 수술 전에 수없이 들었던 합병증,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단어가 이제는 나를 직접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치료는 매일 받으러 와야 했기에, 맞춤 사이즈의 스타킹만 주문한 다음, 소견서를 받아 본가의 대학병원에서 나머지를 진행하기로 했다.


압박 스타킹은 생각보다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주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팔이 접히는 부분이 붉어지면서 쓰라리기까지 했다. 최대한 통증을 참고 버티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점점 스타킹을 벗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내 팔의 붓기와 함께 대학병원 예약 날짜가 다가왔다.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진료실에서 나는 다시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의사한테 엄청 혼났다.


"이거 그냥 붓는 거 아니에요. 관리 안 하면 점점 심해집니다. 이제 와서 팔 조물거리고 해도 소용없어요."


뜨끔했다. 같이 간 여동생이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마지막에 "원래 본인은 심각성을 잘 모른다"는 의사의 말 덕분에 그나마 살았다. 혼난 건 나였지만, 최소한 무책임한 환자라는 낙인은 찍히지 않은 것 같았다.


치료는 최대한 빨리 잡혔다. 약 이 주간 붕대 감는 법과 마사지 법 등을 배우면서 기계 치료를 병행할 거라고 했다. 물론, 그전에 정확한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그 검사는 정말 끔찍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주사를 놓고, 림프의 흐름을 검사하는 과정이었다. 현대 의학의 고문이었다. 다시는 받고 싶지 않다.




14일 간 꼬박꼬박 받은 치료는 그나마 진전이 있었다.

문제는 이제 평생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과거에 미련하게 회사를 버텼던 그 상황의 나 자신까지 떠오르며 짧게 한탄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티는 삶이 아니라,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keyword
이전 16화정해진 시간, 같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