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1화. 아버지를 닮은 그림자

by 하오빛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던 오후,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 순간, 군 병원에 있을 때 면회 오셨던 아버지를 그리며

적어 두었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책장 속에서 누렇게 변한 노트 한 권을 꺼내 들쳤다.


늙어져 주름진 두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알지 못한 사이에 가슴이 젖어들고 있었다.


예전의 아버지 손은 두껍고 단단했다.

자식이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

늘 먼저 다가와 토닥여주던 그 손.

지금은 핏줄만이 도드라진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손이 되어 있었다.


세상을 두 눈으로 꿰뚫어 보던 위엄 있고 강인한 눈빛의 아버지는

이제 자식 사랑 앞에서 천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푸른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며

“내 장한 아들아” 하며 손을 내미시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분의 손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면회가 끝나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발걸음,

그 뒤로 따라오는 그림자는

무겁고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품에 다시 안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조용히 말하고 싶다.


“아버지,

당신이 자랑스러워하신 그 아들로

저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나야,


너는 그날 쓴 시 한 편으로

많은 말을 대신했지.


아버지의 눈물, 손길, 뒷모습

그 모든 걸 마음에 담았지만,

끝내 말로는 다 하지 못했잖아.


그리고 지금의 나는

너에게 고백할 게 있어.


그때 네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버지를

나는 지켜드리지 못했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암,

그 병이 아버지를 너무 이른 나이에

먼 길로 데려가 버렸어.


벌써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의 그림자를 기억하고 있어.

살다 보면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곤 해.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어투,

걸음걸이,

그리고 웃을 때 눈가에 생기는 주름까지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의 너에게


“아버지를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네 마음속에, 그리고 내 마음속엔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계셔.”


오늘,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조용히 불러보고 싶다.


“아버지—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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