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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니찌와, 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by 아호파파B

저녁 8시, 이미 많은 사람들이 퇴근하고 빈자리가 늘어났다.

사무실 오른쪽 구석 책상에 앉은 50대 후반의 와타나베 부장은 오늘도 변함없이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문득 궁금해진다. 저 부장님은 하는 일도 없는 거 같은데 왜 밤늦게 까지 집에 가지 않는 것일까?


타닥타닥타다다닥...

키보드 타건음만 사무실을 채웠다.

사람들이 떠난 빈 사무실에서 울려 퍼지는 키보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밤은 깊어 가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업무에 아호는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바쁘게 오가지만, 정작 머릿속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퇴근시간이 지나면 몸이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마치 뇌의 전원이 강제로 꺼진 것처럼. 머릿속에 있는 코드를 짜내야 하는 지식 노동자는 정지된 화면 속 쓰다만 프로그램 코드를 바라보며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만둘 수 없었다.

물론 개인의 책임감도 있었다.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아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만약 여기서 손을 놓고 나간다면, 일본인들은 뭐라 생각할까.


'역시 외국인은 안 되는구나'

'한국 사람들은 이렇더라',

'한국인은 저렇더라'


자신 때문에 한국인 전체가 나쁜 인상으로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일본에서 '나'는 한 개인의 '나'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그저 '한국 사람'이었다.

이 무게를 짊어지고, 힘든 일도 버티면서 살아왔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온 클라이언트가 술잔을 기울이며 불쑥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끝까지 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일본 IT업계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아호처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타지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독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독하게, 버티며 살고 있었다.




한국은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밤늦게까지 불 켜진 식당, 카페, 슈퍼, 술집들. 모든 곳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아호는 밤 8시에 헬스장에 가고, 밤 10시에도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그것이 한국에서 일상이었다.


일본은 달랐다.

대부분 주택에 살았다. 밤 8시면 동네는 어둠에 잠겼다. 전기 절약 때문인지 가로등도 밝지 않았다. 노란빛이 간신히 길만 비출 뿐이었다.

밖에 나가도 갈 곳이 없었다. 역 근처에 작은 이자카야 몇 곳이 있긴 했지만, 늘 단골들만 있었다. 규모도 작고 묘한 텃세가 느껴졌다. 비집고 들어가 단골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 굳이 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회사와 집만 오갔다.

불현듯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혼자 살거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일본의 삶은 굉장히 외로운 곳이겠구나.

희미한 가로등, 텅 빈 거리.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이 적막한 사회, 타지에 혼자 사는 건 아호로서는 상상 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나마 아호는 운이 좋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뛰어와 안겼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격려 해주는 하루카가 있었다.

화목한 가정. 그건 일본에서 아호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회사 사무실을 지키던 와타나베 부장님은 혹시 집에 가기 싫어서 회사에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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