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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우리 야외 결혼식을 덮친 날

by 아호파파B

미뤄왔던 결혼식을 한국에서 열기로 했다.

한일 부부는 양국에서 결혼식을 한 번씩 올린다고 하는데 일본 결혼식 비용이 너무 비싸 한국에서만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아호는 일본에서 한국에 있는 결혼 업체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메일을 주고받고 통화를 직접 돌리며 상담을 했다. 웨딩플래너를 고용하면 편했겠지만, 당시 우리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그래서 모든 걸 직접 알아봤다. 게다가 일본에서 하루카의 가족, 친척, 친구들이 대거 올 예정이었다.

드레스 업체, 메이컵, 사진기사, 야외 결혼식 디자인 업체, 음향 업체, 현악 4중주 팀, 대형 버스, 호텔, 식당 예약까지 준비할 게 산더미였다. 하루카는 하객들에게 나눠 줄 신랑신부 소개지까지 직접 만들었다. 이렇게 몇 개월간 하나씩 미션을 클리어해나가듯이 결혼식을 준비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일기 예보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야외 결혼식이라 비는 올 수 있을 거라 각오했지만 태풍이 올 거라곤 미처 생각도 못했다. 이미 수많은 업체들과 계약된 상황이라 날짜를 옮기거나 취소할 수 없었다. 비행기표와 호텔도 모두 예약이 된 상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매일 하늘을 보며 기도하는 것.


결혼식 하루 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결혼식 당일 오전 비행기로 친척들과 함께 오실 예정이었다. 하지만 혹시 태풍 때문에 딸의 결혼식에 가지 못할까 봐 아호와 하루카와 같이 출발하는 비행 편으로 티켓을 바꾸셨다.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태풍이 곧 상륙한다는 일기 예보에 시끄러웠다. 호텔 유리창 너머로 빗줄기는 점점 굵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호와 하루카는 그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만 바라보았다.


결혼식 당일. 오전 8시.

원래라면 일본에서 오는 하객들이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비행기가 결항됐다. 도쿄에서 오려던 하루카 친구들도, 나고야에서 오려던 친척들도 아무도 올 수 없었다.

예약된 미용실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고작 6시간 후 야외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결혼 업체, 친구, 지인들의 전화였다.


"이 날씨에 정말 결혼식 해요?"

"오후 3시 시작이에요. 비바람이 불어도 어쨌든 결혼식은 합니다."


아호는 자동응답기처럼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방관이 들이닥쳤다.


"옆에 전봇대가 쓰러졌어요. 여긴 전기 안 나갔나요?"


강풍에 전봇대가 넘어갔다고 했다. 미용실 밖은 난리였다. 비바람이 모든 걸 날려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미용실 전기는 안 나가고 살아 있었지만 아호의 멘탈은 이미 나가 있었다.


결혼식 당일, 정오 12시.

아침에 무섭게 내리치던 비바람이 조금씩 약해졌다. 비가 왔다 안 왔다 반복하기 시작했다. 업체들은 서둘러 작업에 들어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뒤편에 큰 천막을 쳤다. 한옥 마당 흙바닥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급히 흙을 구해와 웅덩이를 메웠다. 의자를 세팅하고, 웨딩 아치를 세웠다. 하루카는 웨딩드레스를 입으로 한옥 한편에 마련된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호는 분주했다. 3시간 만에 모든 세팅을 다 해야 했다. 곧 시작될 결혼식을 위해 이것저것 체크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결혼식 당일, 오후 2시,

결혼식 1시간 전, 거짓말처럼 날씨가 갰다.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다. 태풍이 모든 구름을 끌고 가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현악 4중주 연주자들도 도착했다. 비가 오면 야외 연주를 못 한다며 불참하겠다고 했던 분들이었다. 식 시작이 가까워지자 하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아호는 식장 앞에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좋아졌네요"


오시는 분들마다 입을 모아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비를 맞으며 결혼식을 할 각오도 했지만 우리 결혼식을 하늘이 축복하듯 햇살이 환하게 내려앉았다.


결혼식 시작.

하객분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 하루카와 아호는 맹세했다.

평생 함께 하기로...

이렇게 행복하게 결혼식이 끝났으면 좋았을련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은 늘 그랬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매 순간 드라마 같았다. 그래서 더 우리 다운 결혼식이었다.

마지막 기념사진 촬영 시간. 촬영 기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은 남는 게 사진뿐'이라는데, 결혼식 마지막까지 그가 오지 않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연락해 보니 태풍 때문에 결혼식이 취소된 줄 알았다고 했다.

하객으로 온 친구가 최신 아이폰을 건넸다. 친구의 아이폰 카메라 앞에서 모두 환하게 웃었다.

찰칵.

전문 사진가 필름 속이 아닌 핸드폰 앨범 속에 이 날의 모습을 담았다.

촬영기사가 오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하객들이 나중에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받은 몇 장의 사진들만이 우리 결혼식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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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아메온나(雨女)'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날, 어김없이 비를 불러오는 여자.


장모님은 농담처럼 자신을 아메온나라고 부르곤 했다. 실제로 장모님의 결혼식에도 태풍이 왔다.

그런데 설마, 그 운명이 하루카에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태풍 때문에 오지 못한 일본 하객들. 급하게 세팅한 결혼식 장식들. 친구가 휴대폰으로 찍어준 어설픈 사진들까지.

아메온나 덕분에 우리의 결혼식은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채 완성되었다.


이날 결혼식처럼 앞으로도 태풍 같은 날들이 있겠지만,

그 뒤엔 언제나 환한 햇살이 비춰주리라 믿으며...

아호와 하루카가 함께하는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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