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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이지만 결혼하고 싶습니다.

일본인 장인어른께 결혼 허락받기

by 아호파파B

공항에 도착한 아호는 비장했다.

이번 일본행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겉으로는 코트라(KOTRA)가 주최하는 일본 잡페어 참여였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결혼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일본 취업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호는 해외 취업에서 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외국인을 채용하고 취업비자까지 발급해 주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취업비자까지 발급해 주면서 채용하려는 회사가 1곳이라면, 이미 비자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려는 회사는 10곳이 넘는다.

아호가 일본에서 취업하고 살기로 결정한 것은 하루카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취업비자를 주는 회사로 채용된다고 한들 결혼하면 다시 배우자비자로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진정 결혼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배우자 비자를 신청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자 발급 부담이 없어 좋고, 아호도 채용 회사의 선택 폭도 넓어지고 비자 변경 신청이라는 번거로움도 없어 좋았다.

아호는 비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하루카에게 전했다.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배우자 비자 해줄 수 있어."


일본에 오기 위해 쏟아부은 그간 아호의 노력도, 그녀의 기다림도 이제는 서로 받아들이기 충분히 했다.

아호는 잡페어 날짜에 맞추어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하루카에게 말했다.


"아버님께 만나 봬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해줘"




아호는 하루카의 집에 찾아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평소와 같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자연스럽게 다과 시간이 이어졌다. 가루녹차를 탄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으며 아호는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하루카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외국인이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아직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하루카를 아끼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이것만큼은 반드시 약속드립니다."


하루카 부모님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아마 하루카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았다. 아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부모로서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이란다. 내 딸이 자네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박수 쳐줄 일이지. 아호군... 하루카를 잘 부탁하네."


장인어른은 따뜻하게 그를 받아들여 주었다. 가장 소중하게 키운 막내딸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아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다. 단지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진심으로 바라셨다.

이어서 장모님이 한마디 덧붙이셨다.


"너희가 결혼한다면...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 수도 있는 거니?"


막내딸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질문이었다. 26년 동안 함께 지내온 소중한 딸이 타국으로 떠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 이 질문 한마디에 그 마음이 묻어났다.


"미래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장담은 드릴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에서 가정을 꾸려 계속 살 생각입니다."


아호의 대답을 들은 장모님은 한결 안도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렇게 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잡페어도, 결혼 허락도 모두 훈훈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본격적으로 배우자 비자를 준비를 시작했다.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복잡한 서류 작성과 증명자료 제출이었다.

배우자 비자를 신청하려면 정말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 연애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와 사진들, 출입국 기록 등등... 하루카가 이 모든 서류를 꼼꼼히 준비해야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 혼인신고였다.

국제결혼의 경우 양국 모두에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팁을 하나 공개하자면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신고하는 것이 훨씬 좋다.

그 이유는 한국의 전산시스템이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늦어도 다음 날에는 등본에 배우자가 표시된다. 이렇게 배우자가 기록된 등본을 가지고 일본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필요한 서류 절차가 조금 간소화되고, 배우자 비자 심사에서도 유리해진다.


하루카가 혼인신고를 하러 한국에 오기로 했다. 결혼식도 없이 곧장 혼인신고부터 하게 된 사실에 마음은 편치 않았다. 준비도, 축하도, 아무런 화려한 의식도 없이 서류 한 장으로 시작되는 결혼이라니. 미안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하루카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서는 원래 혼인신고부터 하는 경우가 많아. 결혼식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해도 돼."


일본에서는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 이유가 일본의 결혼식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살면서 천천히 결혼 준비를 하는 커플들이 많다고 했다.

아호의 미안한 마음은 감사한 마음으로 변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는 하루카의 태도에, 아호는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에게 말레이시아에서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슴속에서 울려 퍼졌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 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다.'

그때 마음속에서 외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떠한 감각이었다.

'놓치지 않고 끝내 붙잡았다. 이 사람'

그때 마음속 울림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되었다.

이젠 새로운 약속을 해야 할 일만 남았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 약속을.




하루카가 혼인신고를 하러 한국에 오기 전날.

아호는 인쇄소로 향했다. 스케치북에 붙일 사진과 글들을 크게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크게 새기려 하니 가정용 프린터로 할 수 없었다. 복사할 내용을 파일에 담아 인쇄소 사장님께 건넸다. 일본어로 적힌 내용이라 인쇄소 사장님이 알아보지 못하길 바랐다.

느낌으로 안 것일까? 아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프러포즈라도 하시나 봐요?"


".... 아... 네...ㅎㅎ"


크게 숨을 쉰다. 마음이 비장했다. 혼인신고, 결혼… 이미 다 정해졌다. 하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도망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 그러나 남자라면, 단 한 번은 맞서야 하는 부끄러움. 그래, 그건—



프러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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