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딸이 내게 알려준 삶의 중요한 방향
"할머니 만나러 꼭 가야해."
비 오는 밤길,
위험하니 이번 제사는 혼자 하시겠다는 엄마 말씀에도 우리 딸 서영이는 단호했다.
아빠 혼자 가려 했는데, 자기도 가야 한댄다.
기어이 아빠 손을 붙잡고,
기꺼이 함께 길을 나섰다.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전을 정갈하게 쌓고,
음식을 하나하나 정성껏 올리며
그 작은 손으로 제사상을 완성해 나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야무지고 대견하던지.
절을 마친 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할아버지 우리 가족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겨우 여덟 살.
하지만 마음은 이미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고,
전통을 배려하고,
가족을 품는 어른 같았다.
돌아오는 차 안, 쓰러진 서영이.
도착하니 벌써 밤 12시 반이었다.
잠든 딸을 안고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
작은 어깨가 어찌 그리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오늘,
딸아이 덕분에
아버지 제사상이 더 따뜻해졌다.
그리고 내 마음도.
그날 밤,
서영이의 모습에서
나는 문득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배운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느낀 대로 움직이는 마음.
서툴지만,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손길.
그것이 어쩌면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의 가장 처음 모습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때때로
더 멀리 가야 한다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진짜 삶의 방향은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날 서영이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조심스럽고도 당당하게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아이를 통해
나는 또 한 번 배운다.
사람이 자라는 과정은
주변을 먼저 생각해 보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오늘도,
우리가 정말 귀하게 지켜야 할 건
그 작은 마음 하나를 놓치지 않는 자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