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쩌면,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by 월화수 엔 Jane


언덕길 끝 작은 아파트 단지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유쾌한 사람'이라 불렀다. 미희씨.

해질녘이면 늘 같은 시간에 형광색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났다.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왜 매일 같은 시간에 계단을 오르며 숫자를 세는지.

왜 매번 낯선 이에게도 귤 한 알, 사탕 하나를 건네는지.

"오늘은 76계단. 어제보다 세 개 더 올랐어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어떤 이는 고개를 돌렸고, 어떤 이는 미소로 답했으며, 어떤 이는 그저 의아해했다.

그녀의 작은 습관들에는 이유가 있었다.

창가의 화분들에게 아침마다 건네는 인사,

모퉁이를 돌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작은 목례,

계단 난간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리는 기도 같은 말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남기는 흔적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것뿐.


이 이야기는 그렇게 미희씨를 만난 열 명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꽃집에서 그녀를 처음 알아본 사장님,

한밤중 편의점에서 그녀의 귤을 받아든 대학생,

새벽녘 택배를 배달하며 그녀의 짧은 인사에 하루를 시작한 기사.

그들의 눈에 비친 미희씨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다.

이 열 편의 기록은 오직 일상 속에 스며든 작은 위로의 순간들을 담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해냈네요." "이 계단, 어제보다 가볍죠?"

"기분 나쁜 날엔 귤 껍질만 까서 향만 맡아보세요. 내 비밀 처방이에요."

미희씨의 말은 결코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그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의미는 언제나 같았다.

"당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작은 손길이 되었다.

특별한 성취 없이도, 화려한 순간 없이도,

그저 하루를 마치고 내일을 맞이하는 것—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봄의 첫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여름의 한낮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때까지.

가을비가 창가를 적시는 밤부터, 첫눈이 내리는 새벽까지.

각기 다른 계절, 다른 시간, 다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미희씨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녀가 매일 아침 시들어가는 잎사귀에 속삭이는 말—"조금만 더 버텨봐. 우린 잘하고 있어"—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한 그녀만의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유쾌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 환한 미소 속에 감춰진 상처,

그 모든 것들이 열 명의 시선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열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떠오를 수도,

혹은 당신이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빗물 같은 존재들이니까.

갈라진 땅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생명을 키우는 빗물처럼,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미희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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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