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주인, 정화의 시선-
동네 꽃집 앞을 지날 때면, 미희 씨는 늘 뭔가를 건넸다.
작고 낡은 인형에 직접 리본을 묶은 것, 말없이 내민 종이학,
혹은,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건네는 햇살 같은 웃음.
“이거요, 그냥... 오늘 기분이 좋아서요~”
툭 건네고는 눈을 찡긋하며 사라지는 사람, 미희 씨.
언제나처럼, 발소리까지 가벼운 사람이었다.
정화는 처음엔 그 웃음이 불편했다.
이 동네에서 가게 하나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햇살 같은 웃음은 마치 내가 서 있는 자리엔 닿지 않는 계절 같았다.
그 밝음은 오히려 정화의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웠다.
꽃집은 겉으론 늘 화사했지만,
정화의 하루는 점점 빛이 바랜 엽서처럼 흐릿해지고 있었다.
가게를 열며 받았던 대출은 여전히 무겁고,
계절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요즘 누가 꽃을 사요. 쌀값도 오르는데.”
그 말은 종종 농담처럼 들렸지만, 정화에겐 꼭 화살 같았다.
이자 날짜가 다가올수록, 꽃잎도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송이에 3천 원, 열 송이 팔아야 겨우…”
향기 대신 계산이 남았고, 마음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다.
장사도, 날씨도 별다른 일 없는 날인데도,
괜히 눈물이 차오를 때가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매출은 여전히 0, 밖엔 비가 추적이고,
물기를 머금은 꽃잎들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가게 안은 말없이 무거웠다.
그때, 문이 덜컥 열렸다.
익숙한 얼굴. 미희 씨였다.
손에는 작은 리스 하나가 들려 있었고,
그 위에 매달린 종이 리본의 글귀가 정화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당신을 응원해요.’
그 짧은 문장은,
복잡하게 엉켜있던 마음속 매듭을
어느 새벽, 잠든 머리를 누군가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것 처럼
천천히 풀어주었다.
정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희 씨는 그날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어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섰다.
말없이 건넨 응원.
굳이 묻지 않기에 더 고마웠고,
강요하지 않아서 더 깊이 스며들었다.
정화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유쾌하게 산다는 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 애써 단단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동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미희 씨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 조용히 리본을 묶어주고 있었다.
“이건 마법의 리본이에요.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아이를 달래던 그 손길은,
마치 사진처럼 정화의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녀는 늘 웃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만의 싸움 속에서 조용히 이겨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실 미희 씨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산다는 이야기,
어딘가로 매일 출근하는 듯 바쁜 걸음,
가끔 재활용센터에서 봉사를 한다는 소문 정도.
어쩌면, 일부러 미희에 대해 더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밝음이 불편했기에, 스스로 선을 그으며 거리를 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웃음과 리본 하나가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가 천천히 녹아내리는 걸,
정화는 마음 깊숙히 느꼈다.
정화는 조용히 혼잣말했다.
“미희 씨, 참 유쾌하시네요.”
그 말을 입에 올린 순간,
잿빛으로만 보이던 하루가
조금은 덜 무거워진 듯했다.
그날 저녁, 정화는 가게 앞에 미희 씨가 남긴 리스를 걸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꽃 시장을 떠올렸다.
시든 꽃이 아니라, 싱싱한 꽃을 들여와야겠다고.
'팔릴까'보다
'피어날까'를 먼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정말,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