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야간 알바생 지훈의 새벽
새벽 두 시. 편의점 안은 시간이 멎은 듯 고요했다.
싸늘한 형광등 불빛 아래,
삼각김밥 포장 비닐이 눌리는 사소한 소음마저
귓가에 날카롭게 박혔다.
카운터에 기댄 지훈은 코끝을 훌쩍이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손끝은 익숙하게 화면 위를 헤맸다.
"워킹홀리데이 신청" "비자 거절 사례" "독일 vs 캐나다"
또 같은 검색이었다.
검색어들을 한참 노려보다가, 그는 휴대폰을 조용히 엎었다.
마음은 여전히 '어딘가로'와 '여기에' 사이에서 흔들릴 뿐이었다.
목 안이 칼칼했다.
어제부터 더 심해진 감기 기운에도 아픈 티를 낼 여유는 없었다.
하루 쉬면 그만큼 벌이가 줄어들고, 그다음 날 지하철비조차 모자랄 수 있으니까.
문득 또 기침이 나왔다.
지훈은 소매로 입을 막으며 몸을 돌렸다.
그때, 어김없이 그녀가 들어왔다.
형광빛 앞치마 대신 짙은 회색 점퍼를 입은 손님.
손에는 보온 텀블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매일 새벽 같은 시간, 우유 한 팩과 바나나 두 개를 사러 오는 그녀였다.
그녀도 코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가끔 작은 기침을 했다.
계산을 마친 후,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텀블러 하나를 카운터에 놓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귤 하나를 꺼내 조용히 까기 시작했다.
"저도 목이 아파서 두 개 만들어왔는데..."
그녀의 말은 중간에 끊어졌다.
마치 혼잣말을 하다가 멈춘 것처럼.
까진 귤 조각이 손수건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따뜻한 텀블러에서 피어나는 김에는 생강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훈은 짧게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사도, 거절도 아닌, 늘 해오던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의 신호였다.
그녀는 그 침묵에 익숙하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물건을 챙겨 일어서면서,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감기... 오래 끌지 마세요."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설명도, 과한 친절도 없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텀블러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알싸한 생강의 온기가 목구멍을 따라 흘러내렸다.
귤 조각을 입에 넣자 시고 단 즙이 혀끝에 퍼졌다.
'저도 목이 아파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몫을 나눠준다는 것.
지훈은 CCTV 화면 속 빈 거리를 바라봤다.
매일 밤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새벽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조금씩 익숙해졌다.
각자의 사정을 안고 지나가는 얼굴들과,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알아보게 된 이 순간들.
그런 게 있었구나.
편의점을 나서며 지훈은 텀블러를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가슴 어딘가는 여전히 따뜻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가방 안 어딘가에 며칠째 미뤄둔
워킹홀리데이 지원서를 생각하는 느낌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그날 밤, 지훈은 책상 앞에 앉았다.
지원서를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귤 한 조각의 단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었고,
생강차의 따뜻함이 가슴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다.
지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 새벽 두 시,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있을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시간들이, 이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