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베네치아

바다와 오브제가 어우러진 하루

by Moonita


베네치아를 걷다 보면, 단지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통과해 온 예술 유산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면, 이 도시가 얼마나 ‘풍요로운 감각’을 품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물길 위에 얹힌 도시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의 결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 Venini 쇼룸에 들어섰을 때,

바다빛처럼 찬란하고 단단한 유리 오브제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형태도 색도 베네치아를 꼭 닮아,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Venini는 1921년 시작된 베네치아의 유리 브랜드다.

유리를 굽고 비틀며 감정을 담는 이들은

‘공예’와 ‘예술’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오래도록 탐색해왔다.

그들의 오브제는 전시용이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든 이탈리아인의 태도였다.

빛의 반사와 투명함, 곡선의 숨결까지—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리 오브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날, 미팅 자리에는 아이도 함께였다.

유럽에서는 그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나는 과거 패션 쇼룸에서, 신생아를 안은 바이어를 본 적도 있다.

그리고 이곳 Venini에서도,

아이도 조용히 우리 곁에서

스케치북에 유리병을 그리고 있었다.


유리 오브제들은, 그저 오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가벼워 보이지만 무게감이 있고,

부서지기 쉬워서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

예술은, 그렇게 공간에 결을 새긴다.






우연히도 같은 기간, 초대받은 이탈리아 친구의 집.

거실의 한 벽면을 Venini의 작품들로 가득 채워두었고,

친구는 빈 공간마다 Venini의 오브제를 하나씩 채우는 것이 로망이라 했다.


그의 가족들은 그 앞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 정서를, 한국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까지 발길을 옮겼지만,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겐 감상할 여유보다,

기능을 따지는 습관이 더 가까웠으니까.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여백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감정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베네치아 인테리어 박람회를 보러 왔던 일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전시장처럼 꾸며졌고,

오래된 창고와 광장, 골목과 수로까지—

공간과 오브제가 말을 거는 듯했다.


그때 처음 느꼈다.

베네치아는 예술을 ‘꾸미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예술인 곳이라는 것을.


이번 아이와의 여행에서도

나는 그 기억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베네치아가 내게 준 것은

유리 오브제가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듯 두어도 괜찮은 여백이었다.


그 여백 위에, 나는 오브제를 올려두듯

조금은 단단하게, 조금은 유연하게

그날의 감정을,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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