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의 도시 베네치아

판타지가 현실이 된 하루

by Moonita





아이에게 이탈리아 지도를 건네며 물었다.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어?”

지도를 살펴보던 아이는 단번에 대답했다.
“스파이더맨 영화에 나오는 데! 물 위에 떠있는 도시!”

그 말에 우리 여행의 일정이 정해졌다.
아이에게 베네치아는 히어로의 배경이었고,
나에겐 몇 해 전 태교 여행 중 혼자 걸었던 기억이 담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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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상버스를 타고
스파이더맨 영화의 배경이었던 리알토 다리로 향했다.
물이 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영화에서 봤던 거랑 똑같아!”



도착한 리알토 다리 앞에서, 아이는 벅차오른 듯 말했다.
“엄마, 나 여긴 두 번째야. 뱃속에 있을 때도 왔다며.”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기억 속 오래된 베네치아 골목이 겹쳐졌다.












배가 불러오던 시절,
출장과 태교를 겸해 찾았던 도시.
수상버스를 타며 나는 그때도 배속의 아이에게 말했다.
“언젠간 이 도시를 네가 함께 걷게 되면 좋겠어.”

그 바람이 그렇게 이뤄졌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베네치아.
풍경은 변함없었고, 감정은 두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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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다.
아이는 봉골레 파스타를 먹겠다고 들떠 있었고,
우리는 바다와 도시가 보이는
무라노 섬의 식당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주문을 하던 중,
직원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 봉골레 배가 안 들어왔어요.”

아이는 살짝 굳은 얼굴을 했지만,
이내 다른 파스타를 골라 맛있게 먹었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테이블 위 웃음까지 모두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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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골레 배가 들어오지 않아 다른 파스타를 먹었던 것도,
아이의 포크가 식사 중 바다에 빠진 것도,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작은 사건이 됐다.

지금도 아이는 그 일을 이야기할 때면 꼭 덧붙인다.
“엄마, 나는 이탈리아에서 그 식당이 제일 좋았어.”














식사 후엔 직원 아저씨가 창가 너머로
유리공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작업공은 창문 너머로 아이에게
작은 공 모양 유리 장식을 선물로 주었다.

그 유리공은 아직도
아이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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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걸었던 베네치아의 기억 위에
아이의 첫 기억이 조용히 겹쳐졌다.

봉골레 대신 고른 파스타,
포크가 빠졌던 바닷가,
그리고 선물처럼 건네받은 유리공 하나.

그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아이의 기억과 한 엄마의 오래된 바람이
마침내 같은 하루 속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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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각자의 판타지는 현실이 되었고,
베네치아는 우리에게
서로의 동화가 되어준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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