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끝나지 않았다
피렌체는 수없이 다녀온 도시였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조금은 가볍게 지나치곤 했던 곳.
하지만 그날 저녁, 우피치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도시가 품고 있던
깊고 오래된 시간을 마주했다.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우피치 앞을 지나가다가 열린 티켓 박스가
언니와 나를 그 안으로 이끌었다.
그건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이 여행에 예정되어 있었던 마주침 같았다.
우리가 들어선 우피치 미술관은,
원래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 가문이
공직자들을 위한 사무실로 지은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이 복도에 예술을 수집하고, 시간을 저장해두었다.
정치의 중심에서 태어난 공간이
이렇게 아름답게 침묵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피렌체의 여름 오후 햇살은
우피치 미술관의 창을 천천히 통과해
작품마다 다른 결로 스며들었다.
보티첼리 앞에서는 숨을 죽였고,
프라 안젤리코 앞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 다빈치의 그림 앞에 멈춰섰을 때,
나는 그 빛이 살아 움직임을 느껴졌다.
그림 속 인물의 피부, 옷자락, 배경의 공기까지—
모든 것이, 마치 지금 막 숨을 쉬기 시작한 듯한 생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붓질이 아니라, 빛으로 그려진 듯한 느낌.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몰입.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이 여행은 ‘느끼는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었다.
우리는 미술관을 나서며
말을 아꼈다.
각자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그 빛과 감동을 오래 기억하려고 애썼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가방 속에 넣어둔 런닝화를 꺼냈다.
종탑에 오르기 위한 준비였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저랑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주세요”
사실 그 말 속에는 몇 해 전,
남편과의 여행에서 겪었던 씁쓸함이 조용히 들어 있었다.
종탑 입구에 섰을 때 나는
생각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 감정을 다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단은 좁았고, 공기는 습했고,
걸음은 점점 가팔라졌지만
우리는 묵묵히 올라갔다.
한참을 오르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순간—
빛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말을 잃었다.
붉은 지붕이 겹겹이 펼쳐졌고,
멀리 두오모의 둥근 돔은
도시의 숨결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그저 감탄했다.
그리고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이 풍경은 몇 해 전,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감정의 정점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2017년 여름, 무덥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피렌체.
그때 우리는, 이 도시가 건네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기엔 조금 젊고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이 탑에 함께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피렌체를 마주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렇게 언니와 함께 선 이 풍경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로 나를 반겼다.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다시 피렌체에 있었다.
이번엔, 남편과 함께였다.
놀랍도록 맑은 날이었다.
아무것도 흐리지 않는 하늘 아래,
피렌체는 조용하고도 단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섰다.
지난해와는 다른 감정, 다른 날씨, 다른 얼굴로.
도시는 그대로였지만
우리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강요하지 않았고,
서로의 속도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날의 풍경 속에서
나는 남편과 일상의 대화를 했다.
이번엔 도시가 아니라, 나란히 걷는 속도가 우리를 안아줬다.
그건 거창한 화해가 아니었다.
말로 풀어낸 이해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맑은 오후에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사람의 감정은, 같은 장소에서도 다르게 피어난다.
그리고 피렌체는,
내게 두 번의 다른 표정을
조용히 받아주는 도시였다.
같은 곳도, 마음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도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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