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듣는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

by Vivienne Hawaii

94세 남편의 취미


어바인에 살기 시작한 이후, 남편은 오래 전의 취미였던 원예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엘에이 행콕 팍에서 살던 시절, 일로 바쁘지 않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정원에 나가 꽃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작은 정원이 딸린 어바인의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다시금 정원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났다.

정원사는 따로 있었지만,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까지 맡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하루 2~3시간씩 직접 정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손길이 닿은 꽃들이 어느새 풍성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손길로 가을엔 데이지, 겨울에는 까멜리아가 만발했던 뒷 마당


또 하나 그에게 일상의 변화를 준 건 ‘유튜브 끊기’였다.

현대 사회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빠른 창구 중 하나인 유튜브를 줄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결단했다. 책장을 정리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종이책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Amazon Kindle을 통해 전자책을 즐겨 읽던 그였기에, 아날로그 방식의 독서는 처음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집 2층의 조용한 공간에서 하루 2~3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느덧 그에게 초심을 되찾게 해주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정원일은 여전히 남편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다독과 정독을 즐기는 그의 성향 덕분에 독서는 그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정원 일이 끝나면, 내가 준비한 점심을 함께한다.

얼마 전부터는 나와 함께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수영도 하고 있다.

사고로 인해 다친 내 무릎 재활을 위해 시작한 수영이었지만, 남편에게도 아내와 함께하는 취미이자 운동이 되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묻는다.

“Mr. 홍, 요즘 하루는 어떠세요?”


그는 환한 미소로 대답한다.

“책을 읽고, 명상하고, 정원의 꽃을 돌봅니다. 그리고 아내와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남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종종 ‘미식가(美食家)’라고 부른다.

FIB(First Interstate Bank)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수많은 해외 출장을 통해 세계 각국의 고급 요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입맛이 고급스러워졌고, 음식에 대한 안목도 깊어졌다.


지금도 그는 구글을 능숙하게 활용하며, 집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 내외의 맛집들을 찾아 나선다.

나이 아흔넷. 하지만 인터넷 활용도는 오히려 50~60대보다 뛰어나다.


이처럼 그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꽤 즐겁다.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보면, 인공지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위기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방법 중 하나로 ‘디지털 지식인’이 되는 길을 제시한다.

가을의 저녁 정종 한잔, Hakata, Japan


남편은 그런 길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그 문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는 호기심으로 도전했고, 지금도 도전과 성취를 반복하며 자신의 일상에 의미를 더해간다.


그는 여전히 생각하고, 연구하고, 배우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나온 시간과 남겨진 시간을 잇는 오늘의 시간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가장 ‘그답게’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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