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천의 기쁨
하와이로 떠나기 전, 우리는 SNU 홈커밍데이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만난 10년 후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이십니다. 사모님이 워낙 잘 챙기셔서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지난번 다친 팔은 괜찮으신가요? 운동을 많이 하시던데, 언제까지 지금처럼 하실 수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제 아내가 저를 잘 돌봐주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후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앞으로 5년쯤은 더 가능할 것 같은데, 그 이후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계세요?”
“저는 오래 살기 위해 운동합니다. 오래 살기 위한 운동은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죠. 후배님께도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난다. 차로 15분 거리의 운동 센터로 향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리셉션의 직원은 늘 웃으며 맞아준다.
“미스터 홍, 오늘도 출근 도장 찍으셨네요! 정말 멋지세요.”
걷기와 근육 운동을 한 시간가량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시간에 맞춰 나는 늘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와이로 이사 온 후에는 저녁 식사 후 함께 30분 정도 와이키키 해변을 걷는다. 석양이 붉게 물든 그 해변에서 마주한 순간순간은 내게 눈부신 보석과도 같았다.
만약 남편에게 “당신의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건강 속의 소소한 실천이 행복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년의 진정한 기쁨 아닐까.
문득 그의 동창 I가 떠올랐다.
I의 정원에는 복숭아, 레몬, 대추 등 과실나무가 가득했다. 그는 매번 전화 통화에서 정원에서 거둔 수확의 기쁨을 이야기했고, 만나기로 한 날이면 항상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한 아름 안겨주곤 했다.
노년에는 자존감이 서서히 낮아지기 쉽다. 그러나 I처럼 정원을 돌보고 식물을 기르는 일은 창의적인 시각을 회복하게 돕고, 삶의 긴장을 풀어준다.
작은 텃밭에서 하나의 씨앗을 틔워 열매를 거두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급자족의 체험이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는 남편 역시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 식물을 가꾸는 행위는 식물과 유대감을 형성하게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도 촉진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일이 많아진다. 외부와의 단절은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는 원예를 통해 다시 사회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통해 식물의 특성, 심는 방법, 병충해 방지법까지 하나씩 배워가며 그의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자기 외의 존재와 삶에 집중하는 경험은, 그의 정신을 젊게 만들었고 또 다른 기쁨의 근원이 되었다
남편은 이 삶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1.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2. 노년에 들어섰다고 해서 자존감이 낮아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3.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할 때, 그것이 바로 노년의 가장 큰 행복이 된다.
이 글은 단순히 한 노인의 삶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94세의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이 어떻게 소소한 실천으로 행복을 지켜내는지를,
그리고 그 곁에서 지켜보는 연하의 아내가 어떻게 존엄한 사랑으로 그 삶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