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나이 차 부부의,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간
오늘은 나의 작은 헤어살롱이 열리는 날이다.
나는 3주에 한 번씩 남편의 머리카락을 손질해 준다.
길게 자란 머리칼을 다듬으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보, 예전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까맣더니…
이젠 온통 하얗네.”
그는 웃으며 되물었다.
“그레이가 아니라?”
나는 장난스레, 또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글쎄… 이젠 정말 별빛 머리칼의 ‘Sir’ 같은 느낌이야.”
일제강점기, 6.25 전쟁, 4.19 혁명, LA 4.29 폭동…
수많은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어낸 청년은
어느새, 나의 말처럼 별빛 머리칼을 한 노신사가 되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
시간 속에서 더 맑은 눈으로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 시기는 어쩌면, 삶의 모든 본질이 통합되는
가장 순수한 통찰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인생은 진보와 성찰의 여정이었다.
그는 인생의 중반까지
수많은 변화와 도전을 거치며
타인을 배려하고 성숙해지는 법을 배웠고,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며
사회심리적 위기들을 긍정적으로 극복해 냈다.
그리고 지금,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살아가는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을 가졌다.
그 속엔, 삶과 지혜, 환희의 순간들이 모두 녹아 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이 모든 시간의 해답이 결국
‘사랑’이었다고 기록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에 대한 답으로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사랑이란,
마치 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한 조건 없는 사랑이다.
남편의 나이 듦을 통해 바라본 인생은,
삶 속의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스스로의 내면을 듣고,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며,
자신의 마음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온 사람이다.
그는 평생,
돈이나 목적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사회규범을 따랐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다.
지금도 그 원칙 안에서 자신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영위하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순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그는 미래를 대비한 유언장(Will)을 작성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말했다.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시금 느꼈다.”
그는 인생의 서사를 기록하듯
지금 이 순간,
시들지 않고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남겨진 시간들을
‘기쁨의 결과물’로 채워갈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결국
즐거운 기억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역사,
그 우선순위를 삶의 가장 위에 놓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감정은 가능한 한 충만하게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나는 지금,
당신을 만나 행복했고,
당신과 하와이에 함께 오게 되어 기뻤으며,
앞으로 다가올 이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있다.
감정은 숨기지 않아야 한다.
그대로 느끼고, 표현해야
사랑이 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내 감정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상처를 미리 아파할 이유도 없다.
마음은 통하는 것이다.
그것은 돈으로도, 명예로도 살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랑.
인간관계 속에서 묻는 수많은 질문의 해답은
결국 앞서 말한 그 단어,
“사랑”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이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남편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리고 그 이별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별다를 것 없는 존재이며,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조차
언제든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전한 인간으로, 값진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라는 것을.
사람은 태어나고,
무언가를 꿈꾸며 살아가고,
결국 죽음이라는 문 앞에 다다른다.
그러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주어진 환경과 나의 능력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실천해 왔는가.
그에 대한 물음이
우리 삶에 남겨질 것이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슬프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곳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남편은 나를 위해 하와이를 선택했다.
내가 이곳에서 홀로 살아갈 미래를 위해,
그는 이곳에 터를 잡고 가기를 바랐다.
하와이에 온 후,
나는 행복해졌다.
두려움도, 슬픔도
이곳의 바람과 바다가
조용히 감싸 안아주었다.
캘리포니아의 화려한 삶보다
하와이의 단순하고 정직한 삶이
다가올 슬픔을 미리 위로해 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만약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더 진심으로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개념인 ‘Born Again’,
다시 태어난다는 말에
오래전부터 깊은 매력을 느껴왔다.
나는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나에게
영적 재생이라는 큰 질문을 던져주었다.
영혼이든 육체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또다시 그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번 생에
내가 먼저 그를 알아보았듯이,
그다음 생에서는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기를 바란다.
나는 알고 있었어.
당신이 나의 사랑임을.
Thank you.
바람이 불어올 때,
당신을 기다릴게.
나의 반세기의 사랑..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