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존엄한 죽음으로서의 가치
나는 남편과 함께한,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이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기억하길 바란다.
기록과 기억, 그것이야말로 내가 남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서툴지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매 순간 남편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겠지만, 지금은 Semi-Retired 된 삶 속에서 내 전공과 커리어가 그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나는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를 조금씩 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존재의 의미인지를.
94세.
남편은 삶의 다음 장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친구들이 하나둘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는 겸허히 자신의 마지막 페이지를 사유한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나의 인생을 ‘완전연소’하며 살고 싶다.”
‘완전연소(完全燃焼)’는 남편의 지인이었던 C여사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그녀는 “인생을 완전연소하겠다”고 종종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다.
서서히 타오르든, 찬란한 불꽃으로 타오르든, 자신의 삶을 최선의 선택과 집중으로 살아내는 것.
나는 언젠가 나도 그렇게, ‘완전연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을 아주 어릴 때부터 가까이서 보았다.
외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신 유일한 보호자였고, 나의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슬픔은 평생 나의 가슴에 남아, 죽음은 늘 내 인생의 어딘가에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SNUH에서 일할 때, 나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중에는 유명 인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인간이었다.
특히 말기 암 환자였던 한 클라이언트가 나의 손을 잡고
“이제 너를 보는구나. 고맙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며,
우리 삶에서 가장 맑고 순수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통로임을 느꼈다.
그는 자기 삶을 이렇게 비유한다.
“내가 잘한 것은 자산이고, 잘못한 것은 부채다.
내 인생이 성취한 ‘순자산’이야말로 나의 인생 결산표가 될 것이다.”
그는 늘 ‘지금, 여기’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베푸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와 함께 하며 배웠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건강을 돌보고, 직업을 갖고, 삶에 의미를 찾는다.
죽음이 없었다면, 철학도 예술도 종교도,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 있음의 가치를 더 절실히 느낀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철저히 준비하도록 만든다.
경제적으로, 의료적으로, 정서적으로도 우리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존엄함으로 다가와야 한다.
나는 남편과 나, 그리고 부모님의 마지막 과정이 ‘존엄한 죽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말한다.
• 죽는 날까지 인생을 사랑할 것이다.
•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 지금, 여기에,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길 것이다.
나는 그의 인생이라는 호수에 내가 안길 수 있었음을, 인생의 가장 큰 선물로 여긴다.
그는 나의 이유였고, 나의 용기였으며, 나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나직이 속삭인다.
“나는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너에게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