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소멸하지 않으나,

제8장.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소멸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

by 이호창

제8장.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소멸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오류 속에서 그 변화를 파괴와 죽음이라 말한다


앞서 「거룩한 담론」의 중심 주제였던 순환적 변화의 사상이 여기서 다시금 중심 무대에 오릅니다. 점성술에 기반을 둔 고대의 한 사변적 흐름은, 행성들이 광대한 시간의 순환 끝에 같은 위치로 돌아오듯이, 지상의 모든 사건 또한 미래에 영원히 정확하게 반복될 것이며, 과거에도 영원으로부터 그리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영원회귀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인 아포카타스타시스(apocatastasis)는 번역자 미드(Mead)가 4절의 시작 부분에서 '복원(restoration)'으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미드는 이 논고가 여러 곳에서 '모호하고(obscure)' '결함이 있으며(faulty)', 특히 3절 시작 부분의 번역은 추정에 기반한 것임을 각주로 밝히고 있습니다.


1. 헤르메스: 아들아, 이제 우리는 영혼(Soul)과 육체(Body)에 관해, 즉 영혼이 어떤 방식으로 불멸하는지, 그리고 육체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활동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들 중 어떤 것에도 죽음(death)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전달하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거나, 혹은 단순히 한 음절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죽음'이라 불리는 것이 실은 '죽지 않음(deathless)'을 의미하는 것이다. 죽음은 파괴에 속하는 것이나, 코스모스(Cosmos) 안에서는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는다. 만일 코스모스가 제2의 신(second God)이며, 죽을 수 없는 생명(혹은 살아있는 피조물)이라면, 이 불멸의 생명의 어떤 부분도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안의 모든 것은 코스모스의 일부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그러한 것은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다.


2. 진실로 만물의 첫째는, 영원하시고 탄생을 초월하신, 우주의 제작자이신 신(God)이시다. 둘째는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코스모스이니, 그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그에 의해 유지되고 양육되며, 그의 아버지에 의해 불멸하게 되어, 영원히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제 영원히-사는 것(ever-liveth)은 영원한 것(the Eternal)과 다르니, 그는 다른 이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며, 설령 그가 존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그것이 영원하다는 점에서, 전체(the all)이다. 아버지는 그 자신으로부터 영원하시지만, 코스모스는 아버지에 의해 영원하고 불멸하게 되었다.


3. 그리고 그 아래에 저장된 물질로, 아버지는 그것으로 보편적인 육체를 만드시고, 그것을 함께 뭉쳐 구(球) 형태로 만드셨다. 생명을 감싸고 있는 그 구체는 그 자체로 불멸이며, 물질성(materiality)을 영원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께서는, 그의 이데아(ideas)들로 가득 차, 생명들(혹은 살아있는 피조물들)을 그 구체 안에 씨 뿌리시고, 동굴 안에 가두듯이 그들을 가두셨으니,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것들로 생명에 질서를 부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멸성으로 보편적인 육체를 감싸셨으니, 이는 물질이 육체의 구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여 자신의 본래적인 무질서(unorder) 속으로 해체되기를 원치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들아, 물질은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았을 때, 즉 아직 육체로 형성되지 않았을 때, 무질서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이곳 아래에서 다른 작은 생명들(혹은 살아있는 피조물들)을 감싸며 이 무질서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으니, 바로 사람들이 죽음이라 부르는 저 증가와-감소이다.


4. 이 무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지상의 생명들 주위에서이다. 천상의 존재들의 육체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의 규칙으로 할당하신 하나의 질서를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서가 해체되지 않고 보존되는 것은 바로 그들 각자의 복원(restoration)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지상 육체들의 ‘복원’은 그들의 구성(composition)이며, 반면 그들의 해체(dissolution)는 그들을 결코 해체될 수 없는 육체들, 즉 죽음을 알지 못하는 육체들로 되돌려 놓는다. 따라서 야기되는 것은 감각의 박탈(privation of sense)이지, 육체의 상실(loss of bodies)이 아니다.


5. 이제 제3의 생명인 인간은 코스모스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음(mind)을 가졌으며, 모든 지상의 생명들을 넘어, 제2의 신, 즉 코스모스와 감응할 뿐만 아니라, 제1의 신에 대한 인식(conception) 또한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코스모스)를 육체로서 감각하고, 다른 하나(신)를 비물질적인 것이자 선한 마음(Good Mind)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타트(Tat): 그렇다면 이 생명은 소멸하지 않습니까? 헤르메스: 아들아, 조용히 하라! 그리고 신이 무엇인지, 코스모스가 무엇인지, 죽을 수 없는 생명이 무엇이며, 해체에 종속된 생명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정녕, 코스모스는 신에 의해 그리고 신 안에 있으며, 인간은 코스모스에 의해 그리고 코스모스 안에 있음을 이해하라. 만물의 근원이자 한계이며 구성은 바로 신이시다.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소멸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오류 속에서 그 변화를 파괴와 죽음이라 말한다」 주해


소멸이라는 이름의 착각


인간의 유한한 의식이 마주하는 가장 큰 장벽은 ‘죽음’이며,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깊은 공포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파괴되어 무(無)로 돌아간다고 믿으며,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여덟 번째 논고에서, 헤르메스는 바로 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에 도전합니다. 그는 ‘죽음’과 ‘파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은 우리의 언어가 만들어낸 “오류”이며, 진실을 보지 못하는 감각의 착각일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이 논고는 우주 안에서 어떤 것도 진정으로 소멸하지 않으며,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현상은 단지 영원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 일어나는 ‘형태의 변화’일 뿐이라는 위대한 진실을 설파합니다. 이 가르침은 소멸에 대한 공포를 우주적 질서에 대한 깊은 신뢰로 변성시키는, 헤르메스주의적 위안의 복음입니다.


파괴될 수 없는 코스모스: 제2의 신


헤르메스의 논증은 하나의 장엄한 대전제에서 시작합니다. “만일 코스모스가 제2의 신이며, 죽을 수 없는 생명이라면, 이 불멸의 생명의 어떤 부분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코스모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이 우주 전체를 단순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신적 유기체(a life that cannot die)로 바라보는 헤르메스주의의 근본적인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이 ‘제2의 신’은 지고의 신(제1의 신)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아버지의 불멸성을 물려받아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주 안의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 돌멩이 하나까지—은 이 거대한 불멸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일부, 즉 ‘코스모스의 지체(肢體)’가 됩니다. 만일 전체가 불멸이라면, 그 부분을 이루는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는 결코 소멸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이는 마치 현대 물리학이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통해 우주 안의 총 에너지양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단지 그 형태만을 바꿀 뿐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헤르메스주의는 수천 년 전에 이미, 존재의 총합은 영원하며, 우리가 경험하는 생성과 소멸은 단지 그 존재가 다른 형태로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통찰했던 것입니다.


죽음, 그 본질은 해체와 복원(Apocatastasis)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죽음과 부패의 현상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헤르메스는 이것이 ‘파괴’가 아니라, 일시적인 결합체의 ‘해체(dissolution)’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지상의 존재들은, 아버지께서 “무질서(unorder)” 속에 있던 원초적 물질(matter)을 가지고 빚어낸 일시적인 구성물입니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이 구성이 해체되어 그것을 이루고 있던 요소들이 각각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뿐, 그 요소들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복원(restoration)”, 즉 그리스 철학 용어인 ‘아포카타스타시스(apocatastasis)’라고 부릅니다. 이는 ‘원래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스토아 철학의 우주적 순환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지상 육체의 해체는 그것을 구성하던 원소들이 “결코 해체될 수 없는 육체들, 즉 죽음을 알지 못하는” 원형적이고 영원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는 것은 오직 “감각의 박탈(privation of sense)”이지, “육체의 상실(loss of bodies)”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레고 블록으로 만든 집을 무너뜨릴 때, ‘집’이라는 형태는 사라지지만, 그 집을 구성하던 각각의 ‘블록’들은 파괴되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새로운 구조를 만들 준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천상의 존재들과 지상의 존재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천상의 존재들, 즉 별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의 규칙으로 할당하신 하나의 질서”를 영원히 보존합니다. 그러나 지상의 존재들은 ‘증가와-감소’라는 끊임없는 변화의 법칙 아래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오류 속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조차도 궁극적으로는 더 큰 우주적 질서 안에서의 영원한 복원을 향한 과정의 일부입니다.


존재의 위대한 사슬


논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르메스는 신, 코스모스,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하나의 위계적인 ‘존재의 위대한 사슬’로 정리하며,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설명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코스모스는 신에 의해 그리고 신 안에 있으며, 인간은 코스모스에 의해 그리고 코스모스 안에 있습니다.” 신이 모든 것의 근원이자 한계이며, 코스모스는 신의 첫 번째 창조물이자 아들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코스모스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제3의 생명’입니다.


인간이 이 위계 속에서 특별한 이유는, 그가 단지 코스모스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마음(mind)’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부모인 코스모스(제2의 신)를 ‘감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인 제1의 신을 “비물질적인 것이자 선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이는 인간이 물질계(코스모스)와 정신계(신)를 잇는 위대한 다리임을 의미합니다. 비록 우리의 육체는 코스모스의 일부로서 해체와 복원의 순환 법칙을 따르지만, 우리의 마음, 즉 본질적 인간은 그 법칙을 넘어 영원한 근원인 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 논고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위안과 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덧없이 사라질 유한한 육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 육체적 형태에서 분리하여, 불멸하는 코스모스의 일부이자 영원한 신의 마음과 연결된 존재로 인식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소멸은 착각이며, 오직 영원한 생명의 변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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